정부 사과 등 野 요구 수용했지만
2022년 1월부터 시행 중인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아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법 제정 당시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등 처벌에 비해 의무사항이 불명확하다는 논란을 겪으면서 50인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 시기를 2024년 1월로 미뤘다.하지만 법 시행 직후부터 인력난을 겪고 있는 영세 중소기업들은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하고 법 적용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호소해 왔다. 이에 여당은 지난해 9월 50인 미만 기업에 대해 적용을 2년 추가 유예하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당정은 작년 12월 야당의 협조를 요청했다.
입법의 키를 쥔 민주당도 세 가지 조건을 전제로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혔다. 준비 부족에 대한 정부의 사과, 구체적인 향후 계획과 정부 지원 방안 마련, 2년 뒤 모든 기업에 적용하겠다는 경제단체의 약속 등이다.
정부는 야당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부총리와 고용노동부 장관이 공개석상에서 준비 부족을 여러 차례 인정했고, 지난해 말 84만 개 전체 사업장에 대한 안전진단 등 정부 지원책을 발표했다. 중소기업단체는 물론 경제 6단체 공동명의의 “2년 후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거대 야당은 묵묵부답이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임박
일하다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전보건관리체계 마련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 공백으로 사실상 폐업이 불가피한데, 즉각적인 엄벌보다는 실질적인 사고 예방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게 영세 중소기업들의 호소다.중대재해법 입법 취지도 중소기업계의 호소와 맥이 닿아 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 사고 발생 때 현장책임자만 처벌하고 본사 경영책임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중대재해법의 취지인데, 대부분 영세 중기의 경우 현장책임자와 경영책임자가 같은 인물이다. 당장 일할 사람도 못 구하는 마당에 “안전책임자를 뽑으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은 한숨만 부를 뿐이다.
중대재해법은 사고를 전제로 강제되는 법이어서 근로시간 위반처럼 계도기간을 두거나 시정지시를 할 수도 없다. 1월 27일이 지나면 2월, 3월에 입법을 하더라도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84만 중소기업인의 호소가 여의도에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