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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트라우마' 딛고 원화 국제화…기업은 환율 리스크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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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소기업 A사는 지금까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의 업체와 무역거래를 할 때 수출입대금을 항상 달러로 지급해왔다. 해당 업체가 소재한 국가의 은행이 미국을 거쳐 국내 주계약 은행으로 달러를 송금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원화로 환전한 수출대금을 지급받는 과정에서 A사는 은행에 환전 수수료를 내야 할 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 변동 리스크에 시달려야만 했다.

올 하반기부터 일부 아세안 국가와 거래하는 국내 기업들은 이 같은 부담을 한층 덜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정부가 무역거래 시 거래비용 절감을 위해 수출입 대금 원화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31년간 유지한 외환 규제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행 외국환 거래규정은 외국에 있는 개인·법인 등 비거주자가 국내 금융회사에 예치한 원화를 해외로 송금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무분별한 원화 유출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강력한 규제를 둔 것이다.

물론 예외 규정이 있다. 비거주자는 국내 금융회사에 자유원계정(Free-Won Account)을 개설하면 예치한 원화를 자유롭게 외화로 환전해 송금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원화 국제화를 위한 첫 단계로 원화에 대외 결제 기능을 부여하기 위해 1993년 처음으로 도입됐다. 외국 법인 등 비거주자가 이 자유원계정을 통해 국내 기업에 원화로 물품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

제도가 도입된 지 31년이 지났지만 자유원계정을 통한 무역 거래는 유명무실했다. 정부는 자유원계정을 도입하긴 했지만, 외국환 거래규정을 통해 일부 허용한 거래 외에는 원화 이체 및 처분을 금지해왔다. 2010년 미국의 대(對)이란 봉쇄에 따라 이란과의 거래 과정에 자유원계정이 활용됐을 뿐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외환위기를 겪은 상황에서 외국인이 원화를 대량 보유하고, 이를 해외로 송금하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작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원화 결제를 확대하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엔 중국 상하이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개설됐다. 이는 양국 기업들이 필요할 때 원화 및 위안화를 조달하기 위해 만든 시장으로, 수출입대금 결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외환당국의 설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6월 말 국내 기업의 수출대금 중 달러화 결제 비중은 81.1%에 달한다. 원화는 2.8%다. 이는 수출입대금을 원화로 결제한 것이 아니라 계약서상 명시된 통화 비중으로, 무역거래 과정에서 원화 거래는 사실상 없었다는 것이 기재부 설명이다.
원화 국제화 첫발 디뎌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거시경제 지표가 탄탄해졌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도 4201억5000만달러로, 실탄을 넉넉히 갖춘 상황에서 국내 외환시장의 빗장을 풀 때가 됐다고 보고 있다. 원화 결제 시스템 도입도 국내 기업들의 거래비용 절감과 함께 원화 국제화를 위한 첫발을 내디디려는 계획의 일환이다.

올해부터 해외에 있는 외국 금융회사가 국내 외환시장에 참여해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오는 7월부터 국내 외환시장 마감 시간을 런던 금융시장이 마치는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연장한 것도 국내 외환시장의 빗장을 풀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다.

정부는 원화 결제 시스템 도입을 위해 비기축통화국인 아세안 국가를 집중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등 기축통화국은 원화 결제 수요가 사실상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

국내 B사가 아세안 기업인 C사에 제품을 수출하는 경우 C사는 아세안 은행에 현지화를 원화로 환전해 송금해 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송금 요청을 받은 국내 민간은행은 B사에 원화로 수출대금을 지급한다. 한국과 아세안 민간은행은 원화와 현지화 간 직거래를 중개한다. 달러로 환전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거래 비용을 줄이고, 거래 과정에서 환율 변동 리스크도 축소할 수 있다.

강경민/박상용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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