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시(市)에서 열린 제3차 핵융합에너지회의(FEC). 옛 소련 과학자들이 핵융합연구장치 ‘T-3’를 통해 플라즈마 온도를 섭씨 1000만 도까지 높였다고 발표했다. 태양에서 핵융합이 일어나는 조건에 가까웠다. “지구에 인공태양을 만들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퍼졌다.
60여 년이 흘렀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매달렸음에도 핵융합은 공상과학(SF)영화 속 소재로만 남았다.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과학적 진보’를 묻는 말에 망설임 없이 핵융합을 꼽은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핵융합은 기약이 없어 보였다.
이 와중에 인공지능(AI) 혁명이 일어났다. 발 빠른 과학자들이 AI를 첨단 기술 연구개발(R&D)에 접목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한국형 핵융합장치 ‘KSTAR’를 AI가 관리하는 가상의 R&D 실험실인 ‘디지털 트윈’으로 옮겼다.
권재민 핵융합연 통합시뮬레이션 연구부장은 “AI로 플라즈마가 터지기 전에 예측하는 방법을 찾아내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했다”며 “AI에 실제 실험 장비를 제어하는 권한까지 부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AI가 초고온·초고압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벌어지는 핵융합 실험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이 필요한 시행착오(Trial&Error)의 반복을 극복할 수 있어서다. 과학자가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는 수십 년의 지난한 과정을 가상현실 속 AI가 순식간에 압축적으로 검증해내는 ‘기술 가속의 시대’가 본격화한 셈이다.
대전=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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