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자라면 세계 누구나 다 아는 인기 커뮤니티인 ‘언리얼 엔진 마켓플레이스’를 K콘텐츠가 ‘습격’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무기는 요즘 세계를 뒤흔드는 K팝이나 K드라마가 아니라 수백년 된 ‘토종 K문화유산’이었다. 연꽃 등 다양한 사물을 형상화한 한국 전통 문양 등 4000건이 넘는 3차원(3D) 그래픽 데이터를 무료로 공개한 것.
게임 제작에 쓸 만한 수많은 자료가 유료로 올라오는 이곳에 양질의 ‘공짜 콘텐츠’가 무더기로 올라오자 커뮤니티 전체가 들썩였다. 8개월 동안 전 세계에서 2억5800만 건(개별 데이터 기준)을 다운로드했고 게임사, 교육기관 등 11곳이 이 데이터를 재료 삼아 게임 개발에 나섰다. 이들 게임에는 한옥이 배경으로 나오거나 한국의 전통 문양이 곳곳에 쓰인다.
데이터를 무료로 올린 곳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원. 2002년 문을 연 이곳은 민간·공공이 생산한 문화·체육·관광 데이터를 수집하고, 통합 관리하는 기관이다. 이 중 공공저작물에 대해선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무료로 개방한다. 지금까지 내놓은 데이터는 4600만 건에 달한다.
최근 서울 상암동 사무실에서 만난 홍희경 한국문화정보원장(사진)은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K컬처가 제대로 날아오르려면 우리 콘텐츠에 ‘디지털’을 입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원장은 MBC 계열사인 MBC C&I 부국장 등을 거쳐 2020년 한국문화정보원장에 선임됐다.
그는 “과거 한국문화정보원의 역할은 아날로그 데이터를 단순히 디지털로 바꾸는 차원이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데이터를 고도화해 더 많은 기업과 창작자가 이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바뀌었다”며 “전통 콘텐츠에 디지털을 제대로 입히면 K컬처의 강도와 넓이가 더 세지고 커질 것”이라고 했다.
홍 원장은 “문화 디지털 혁신은 손 놓고 있어선 안 되는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5월 한국문화정보원이 문화유산 데이터를 공개했을 때 중국인 유저들이 몰려와 “한옥은 중국의 것”이라고 ‘댓글 테러’한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오프라인에서만 벌어지던 ‘문화 전쟁’이 이제 메타버스로 확대되고 있다”며 “디지털을 소홀히 해선 우리 문화를 온전히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홍 원장이 부임 직후 암 진단을 받고도 정부 기관·언론에 ‘디지털 혁신 알리기’를 멈추지 않은 이유다. 그는 “내년에는 수원화성도 3D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고, 게임뿐 아니라 영화·드라마 제작에도 쓸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홍 원장은 한국문화정보원이 제공하는 각종 전시·공연 정보, 관광 정보 등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미 이 정보들을 활용해 사업을 시작한 기업도 여럿 있다. 작품별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는 ‘뮤지엄 커넥트’, 전자책을 읽을 때 분위기에 맞는 배경음악을 자동으로 추천해주는 ‘BGM’, 관광지에서 장애인·노약자 등 보행 약자를 위해 이동 경로를 추천해주는 증강현실(AR) 솔루션 등이 대표적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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