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공매도 방지’를 위해 개최한 2차 토론회가 열렸지만 개인 투자자와 유관 기관 사이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끝이 났다. 개인 투자자를 대표한 참석자들은 공매도 거래 집중화, 실시간 잔고 파악 등을 주장한 반면 유관 기관들은 기관 투자자들에 ‘잔고관리 시스템’ 도입을 의무화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27일 한국거래소는 ‘불법 공매도 방지를 위한 전산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개인 투자자를 대표해 △박순혁 작가(전 금양 홍보이사)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가 참석했다. 유관 기관 참석자로는 △송기명 한국거래소 주식시장부장 △여상현 한국예탁결제원 증권대차부장 △홍문유 코스콤 금융투자상품부장 △김영규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기획부장이 각각 참석했다. 학계를 대표해서는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가 나왔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월 23일 ‘무차입 공매도 방지 전산 시스템 구축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하고 공매도 전산화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2020년 국회가 공매도 거래 전산 시스템 구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결론 내린 것을 뒤집고 다시 원점부터 검토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양측은 이날 공매도 전산화의 방향을 놓고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개인 투자자 측은 공매도 거래의 실시간 모니터링과 집중화된 공매도 거래 전산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변한 반면 유관 기관들은 이러한 방안이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순혁 작가는 공매도 전산화가 가능하다며 2019년 추진된 대차거래계약 전산화 시스템인 ‘트루웹’ 서비스를 예시로 들었다. 주식 대차거래계약을 메신저나 이메일 등이 아닌 전산화 방식으로 기록하는 게 특징이다. 2019년 12월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고도 증권대차 중개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 특례를 받았다.
박 작가는 “2021년까지 트루웹과 같은 서비스를 통해서 이미 공매도 전산화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진척된 만큼 이를 기반으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며 “문제는 현재 트루웹 서비스에 가입된 증권사들이 국내 소수 증권사에 그친다는 점”이라고 했다.
반면 유관 기관들은 이러한 방식을 외국인 투자자까지 모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다수가 ‘에퀴랜드(Equilend)’라는 해외 민간 서비스에 대차거래 정보를 보관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이 회사에 요청하면 차입 거래 여부나 규모 등을 확인할 수 있지만 실시간으로 확인할 순 없다.
송기명 한국거래소 부장은 “에퀴랜드를 통해 대차거래의 80% 정도가 이뤄지는데 이를 쓰지 말고 국내 플랫폼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라며 “만약 특정 대차거래 플랫폼 운영자에게 독점적으로 모든 거래를 집중시킨다면 이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송 부장은 “주문자끼리 서로 개별적으로 협상하는 대차거래도 있어서 표준화된 플랫폼을 구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만 실시간 잔고 파악 시스템보다 증권사에 ‘잔고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불법 공매도를 막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게 거래소 입장이다. 기관투자자의 경우 다수의 보관기관과 증권사를 이용하기도 하고, 여러 부서에서 동시에 매도와 매수 주문을 제출하기 때문에 제3자가 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는 것이다.
송 부장은 “기관 투자자는 매매거래내역과 차입주식 현황 등 자신의 매도 가능 잔고를 실시간으로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잔고 관리 시스템을 의무화하고, 주문을 수탁받는 증권사가 해당 시스템의 구축 여부와 내부 통제시스템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홍문유 코스콤 부장은 “2021년 트루웹 개발사와 함께 관련 검토를 했지만 공매도를 차단하거나 모니터링을 하려면 대차중개시스템만 갖고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낸 바 있다”며 “대차 중개 시스템과 장내 매매를 연계하면 거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개인 투자자 측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공매도 거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가능한 전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맞받아쳤다. 김득의 대표는 “공매도 전산화에서 중요한 것은 비용보다 개인투자자 신뢰 회복”이라며 “비용이 크게 들더라도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면 그 비용을 충분히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