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곳 중 20곳만 공모가 이상
25일 한국경제신문이 올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 최소 3개월이 지난 45개 종목의 주가 흐름을 분석한 결과 공모가 이상의 주가를 유지하는 기업은 20곳(44%)에 그쳤다. 나머지 25곳은 상장후 3개월 이상 투자했을 경우 손실을 봤다는 의미다.우선 산업별로 희비가 갈렸다. 반도체와 2차전지 종목들은 공모가보다 크게 상승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1월 공모가 2만8000원에 상장한 반도체용 특수가스 제조업체 티이엠씨는 현재 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2차전지용 튜브업체 제이오는 2월 1만3000원에 상장된 후 2만9400원까지 올랐다. 반도체업체 기가비스, 자람테크놀로지의 주가 흐름도 좋았다.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투자 성과가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2월 1만500원으로 상장한 사이버보안업체 샌즈랩은 지난 22일 7960원에 거래를 마쳤다. 10개월 동안 약 24% 하락한 것이다. 5월 상장한 사이버보안 회사 모니터랩은 공모가 9800원을 크게 밑도는 6000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같은 달 상장된 인공지능(AI) 얼굴인식 알고리즘업체 씨유박스도 1만5000원 공모가가 현재 7550원까지 떨어졌다. 8월과 9월 각각 상장한 사용자환경(UI)업체 인스웨이브시스템즈와 악성코드 차단기업 시큐레터도 공모가를 뚫지 못하고 있다.
적자 기업엔 거리 둬야
회사 실적도 투자 성과를 가른 핵심 변수다. 상장 전후로 적자 기업인 경우 해당 업종과 무관하게 주가가 부진했다. 8월 상장한 시지트로닉스 주가는 1만1760원으로 공모가(2만5000원) 대비 반 토막 났다. 상장 이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상장 이후에도 분기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게 영향을 미쳤다. 파두, 에스바이오메딕스 등도 적자인 상황이 투자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공모 규모가 크면 주가 흐름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공모 규모가 클수록 더 많은 투자자가 참여하기 때문에 가격이 왜곡될 가능성이 작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공모 물량이 적으면 많지 않은 거래량에도 가격이 급변동할 수 있다. 공모 규모가 크지 않고 시가총액이 작은 경우 상대적으로 기업 규모가 크지 않아 안정적인 실적을 낼 개연성도 낮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새내기주의 경우 사업 내용과 경영진이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아 주가 예측이 기존 상장 주식보다 어렵다”며 “‘유망 산업에 속할 것’ ‘적자를 내지 않으면서 매출이 증가할 것’ ‘시총이 어느 정도 이상일 것’ 등 나름의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투자해야 손실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상장 첫날 추격 매수는 필패
투자 시점도 종목 선별 못지않게 투자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꼽혔다. 기업공개(IPO) 이후 3개월 이상 된 45개 새내기주 중 5곳(11%)만이 첫날 전고점을 돌파했다. 나머지 40곳은 첫날 전고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청약을 통해 공모주에 투자한 경우 수익을 낼 확률은 44%에 달했다.한 사모운용사 대표는 “올해 공모주 시장은 상장 첫날 기관투자가의 물량을 개인투자자가 넘겨받고 다시 다른 개인투자자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주가가 단기 과열되는 경향을 보였다”며 “산이 높을수록 골이 깊기 때문에 첫날 ‘따따상’(300% 상승) 종목은 투자할 때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내년에도 공모주 단기 과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때문에 상장 첫날 뒤늦게 매수에 나서는 건 피하는 게 합리적이다.
올해 공모주와 함께 공모시장을 달군 스팩(SPAC)은 투자 성과가 좋지 못했다. 올해 상장 후 3개월 이상 된 스팩 28개 중 공모가와 ±10% 이상 가격이 벌어진 종목은 한 곳도 없었다. 공모 첫날엔 다른 공모주처럼 공모가 대비 두세 배 급등하는 사례가 나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종목이 공모가에 수렴했다. 공모 첫날 스팩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보고 추격 매수에 나섰다면 100% 손해를 봤다는 의미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