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의 권익 찾기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주주총회 표 대결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할 경우 금융당국에 해당 지분을 신고·공시하도록 한 자본시장법상의 이른바 ‘5% 룰’이 소액주주 운동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구두·서면 합의 등을 통해 5% 이상 지분을 모아 의결권을 공동 행사했음에도 공시하지 않았다며 회사 측이 5% 초과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이로 인해 주총 결과가 뒤바뀌고 회사와 소액주주 간 법정 공방이 이어지면서 경영권 분쟁도 장기화하고 있다.
○소액주주 의결권 제한 속출
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임시 주주총회를 연 코스닥 상장사 티사이언티픽은 이사 선임 안건을 놓고 벌인 표 대결에서 소액주주 측에 승리했다. 소액주주 측이 주주 제안한 7명의 이사 선임 안건은 모두 부결됐고 회사가 제시한 이사 선임 안건은 모두 통과됐다.
최초 집계 때 양측이 확보한 의결권은 회사 측 약 34%, 소액주주 측 약 42%였다. 하지만 주총 의장은 소액주주 측 지분 중 약 11%의 의결권을 제한하면서 결과가 바뀌었다. 일부 소액주주가 경영 참여 목적으로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는 공동 보유자에 해당함에도 공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공동 보유자는 합의나 계약 등에 따라 주식을 공동 매매하거나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는 주주다. 현행법상 공동 보유자의 5% 룰 위반 여부는 주총 의장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올해 소액주주와 경영권 분쟁을 겪은 헬릭스미스 및 만호제강 소액주주도 비슷한 이유로 주총에서 각각 약 4%, 약 11%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받았다.
○커지는 찬반 논란
과거엔 소액주주의 5% 룰 위반 여부는 별 이슈가 되지 않았다. 소액주주 결집 표가 많지 않아서다. 하지만 소액주주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소액주주 측이 회사 측보다 많은 의결권을 확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회사 측은 일종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5% 룰 위반을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5% 룰 위반으로 판단하려면 구두나 문서를 통해 공동 의결권 행사에 합의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회사 측은 SNS, 주주연대 온라인 카페 등에 올라온 글까지 찾아 근거로 삼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를 놓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경영권 분쟁에 놓인 회사들은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5% 룰에 따라 주식 보유자를 공시해야만 공격 측의 명확한 실체를 파악하고 방어 전략을 짤 수 있는 만큼 5% 룰 위반 지분은 의결권을 제한하는 게 정당하다는 것이다.
소액주주들은 회사 측이 5% 룰을 악용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동 의결권 행사 주주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회사 측의 의장이 명확한 근거 없이 의결권 일부를 제한해도 사후적으로 주총 취소 소송 등을 통해서만 다툴 수 있는 점도 문제란 지적이다.
의결권 제한을 피하기 위해 파나진, 디엔에이링크 등의 소액주주들은 공동 보유 약정을 맺고 보유 지분을 각각 공시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소액주주는 5% 룰 위반 근거로 의결권이 제한되면 사후적으로만 사실관계를 다퉈야 하는 만큼 주총 이전부터 충분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