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돌잔치 때부터 아이가 걸어들어오는지 아닌지 비교하기 시작해 성적, 대학, 직업 등으로 끝없이 비교해요. 아이를 낳으면 엄마 자격으로 입시에 참전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지난 7일 보건복지부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마련한 저출산 관련 간담회에선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했거나 특별한 계획이 없는 청년 12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명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맞벌이 무자녀 부부)으로 불리는 이들은 아이 없이 '둘'로 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나눴다.
30대 중반 여성 이모 씨는 태어날 때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각박한 현실이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어릴 적 입시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이 씨는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해결되지 않는 사교육 문제 등 극심한 경쟁사회"라며 "무한경쟁이 반복되는 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시와 취업 전쟁을 직접 겪은 젊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똑같은 경험을 물려주려 하지 않고 본인도 피 말리는 경쟁에 다시 뛰어들고 싶지 않아 출산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이 씨는 이어 "아이 성적은 곧 부모 성적표인데 최근에는 엄마들의 학력 수준이 더 높아지면서 입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고 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개근하는 아이들을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으로 비하하는 '개근거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교문화가 심각하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도 부모 차를 브랜드로 말한다"며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경쟁문화를 지적했다.
이날 자리에선 경제적·심리적 여유가 부족해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결혼 4개월 차 남성 이모 씨는 "40년 전 보다 물가는 급격히 올랐는데 급여 상승률은 그만큼 따라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아이를 낳았을 때 더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참가자인 배 모 씨는 "주말부부에다 원리금을 갚아나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아이를 양육하며 생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결혼 8년 차인 한 참가자는 "내 아이가 나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안 생겨 출산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긴 근로시간 탓에 아이를 갖기 힘들다는 토로도 있었다. 사회복지업에 종사한다는 한 참가자는 "야근이 많고 주말 출근까지 일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직장 내 야근을 없애고 돌봄시설을 늘리는 등 관련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출산에 따른 여성의 경력단절 우려가 여전히 크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배 씨는 "와이프가 아이를 낳은 뒤 커리어가 단절돼 자존감이 떨어지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결혼 10년 차인 김모 씨도 "와이프는 '아이가 있으면 내 인생이 없어질 것 같다'고 말한다"며 "저출산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만큼 이민 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를 주재한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은 정말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저출산으로 우리나라가 서서히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되지 않도록 참가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신속히 정책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