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김용균 씨 사망 사고와 관련해 원청기업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어제 확정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상하탄설비 운전원이던 김씨는 2018년 12월 새벽에 석탄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의 안전 위협 요인은 복합적이었다. ‘2인 1조’ 작업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았고, 컨베이어벨트의 안전 덮개가 열려 있었으며, 야간인데도 컨베이어벨트 통로 부근에 조명조차 켜져 있지 않았다. 사고 발생 시 긴급정지를 위한 풀코드 스위치도 불량이었다.
검찰은 2020년 8월 원·하청기업과 양사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 14명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했으나 법원은 원청 대표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판단을 1심부터 내내 유지했다. 회사 대표의 책임은 안전·보건 방침을 설정·승인하는 데 그칠 뿐 개별적인 설비 현황이나 작업 방식의 위험성 같은 현장의 세세한 상황까지 점검하고 위험 예방 조치를 이행할 직접적·구체적 주의의무를 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책임을 지운다면 회사 대표는 다른 일을 제쳐두고 안전관리에만 매달리거나,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으로 경영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나.
이 사건은 ‘위험의 외주화’ 논란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돼 작년 1월부터 시행되는 계기가 됐다. 산재로 사망 또는 2명 이상 중상자가 나올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게 법의 요지인데 지금까지 드러난 부작용이 적지 않다. 경영책임자에 관한 규정, 원청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규정 등이 지나치게 추상적·포괄적이어서 이현령비현령의 소지가 크다. 법 시행 이후 원청 대표 처벌이 잇따랐지만 산재 사망은 오히려 늘고 있다. 노동계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노동자·시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판결”(민주노총)이라며 처벌 강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현장 관리자부터 원청 대표까지 책임의 범위를 한껏 확대하는 분풀이식 처벌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 판결에도 큰 시사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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