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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장애 이겨내고 사막을 함께 건너는 ‘두 낙타’ 헬렌과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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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청각 장애를 모두 가진 헬렌 켈러를 연극 무대에 불러낼 때 물음표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는 헬렌 켈러와 그의 스승 앤 설리번의 이야기를 '오감'으로 불러내는 도전을 했다.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관객도 도전에 동참할 수 있다.

국립극장이 기획한 이 공연은 여덟살에 시력을 잃은 앤 설리번(애니)과 생후 19개월에 시력과 청력을 잃은 헬렌 켈러(헬렌)가 만나 서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2인극이다.

작품의 제목인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는 실제로 헬렌이 애니의 도움을 받아 언어를 습득해가는 과정에서 내뱉은 말이다. 작품 속에서 서로 용기를 북돋우는 응원의 말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극 전반에 걸쳐 고비사막을 걷는 두 낙타에 비유된다. 더운 날씨에 서로 기대 몸을 식히는 두 낙타처럼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다.



극에선 헬렌보다 앤의 비중이 좀 더 높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제때 결막염 치료를 받지 못해 시력을 잃은 앤의 안타까운 이야기와 동생 지미를 잃는 과정, 처음 점자책을 접하면서 세상에 눈을 뜨게 됐을 때의 감동 등이 펼쳐진다. 헬렌을 교육시키는 과정에서 앤이 겪는 좌절과 고민 등도 함께 묘사된다.

운율 있는 대사가 특징이다. 헬렌을 연기하는 소리꾼 겸 배우 정지혜는 헬렌이 언어를 습득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을 판소리로 표현한다. 언어를 배우기 전 헬렌을 연기할 땐 의미 없는 음만 존재하는 구음을 사용하다가, 앤을 만나 점차 언어를 익히며 음이 있는 말을 사용하는 식으로 성장과 변화를 보여준다. 애니 역을 맡은 배우 한송희도 리듬 위에 대사를 얹어 노래하듯이 말하는 방식으로 헬렌과 소통한다.



장애를 가진 관객도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배리어프리(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 장치를 마련했다. 배우들의 대사를 자막으로 전달하는 동시에 수어통역사들이 한명씩 붙어 배우들의 대사를 그대로 전달한다. 영상을 통해 소리나 북 반주, 전자음악의 비트 등이 전하는 진동과 리듬을 시각화하고, 저음을 강조하는 우퍼 스피커로 음향의 진동을 전달해 시각 혹은 청각 장애를 가진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공연 프로그램북도 전부 점자로 돼 있다.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과 함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비장애인 관객은 잠깐 눈을 감거나 귀를 막고 작품을 감상해보는 것도 권한다. 다만 마지막 부분 헬렌이 갑자기 노동자의 권리 등 정치적인 발언을 외칠 땐 극의 흐름과 완벽하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다소 아쉽다.

공연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오는 10일까지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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