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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용품 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이 올해 구조 조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자회사 질레트에 대한 기업가치 상각비용으로 13억달러(약 1조 7063억원)를 인식할 예정이다. 2005년 질레트를 인수하면서 남성 면도기 사업을 지나치게 낙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P&G는 이날 공시를 통해 질레트에 관한 비현금성 상각 비용으로 13억달러를 인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익성이 악화한 데 따른 구조 조정의 일환이다.
P&G 관계자는 "질레트를 인수하면서 인식했던 영업권 가치가 줄어들면서 13억달러의 비용을 인식하게 됐다"며 "강달러 현상과 구조 조정의 여파로 영업권 가치가 줄었다"고 해명했다.
영업권은 M&A 과정에서 붙은 웃돈으로, 인수 대금에서 인수 대상 기업의 순자산 가치를 뺀 금액이다. 손상 비용은 P&G의 회계연도가 종료되는 2024년 6월과 2025년 6월 등 두 차례에 걸쳐 인식되며, 올해 9~12월 분기별 재무제표에 비용을 처음 반영할 계획이다.
당초 P&G는 2005년 질레트를 인수하면서 540억달러를 지불했다. 여성용품에 주력하고 있는 P&G가 남성 면도기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질레트를 인수하자 '세기의 인수합병(M&A)'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당시 "꿈의 거래"라고 호평했다. 18년 전 540억달러였던 질레트의 기업가치는 올해 상반기 기준 141억달러로 감소했다.
2012년 남성 면도기 시장 판도가 요동치면서 질레트 가치가 축소했다. 질레트의 시장 점유율은 2010년 70%대에서 2017년 50% 아래로 떨어졌다. 달러 세이브클럽 등 면도기 월 구독 서비스를 앞세운 스타트업들이 질레트의 독점 구조를 깨트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질레트의 가격 정책에 거품이 끼었다는 마케팅을 펼치며 시장 점유율을 늘려나갔다.
질레트도 뒤늦게 구독 서비스와 보급형 면도날 제품을 선보였지만, 되레 질레트가 보유한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만 훼손됐다는 평가다.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줄어들자 P&G는 2019년에 처음으로 질레트의 기업가치를 평가절하하면서 80억달러 상당의 상각 비용을 인식했다.
질레트 매출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P&G의 남성용품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3% 감소한 64억 2000만달러를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2% 감소한 14억 6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세계 최대 소비재 시장인 중국 경기가 둔화하면서 나타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안드레 숄튼 P&G 최고재무책임자(CFO)는 5일 모건스탠리가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중국 시장에서 P&G 매출 회복세는 더디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 시장이 회복하지 않으면 매출은 쉽게 반등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P&G가 질레트 기업가치를 상각하겠다는 소식이 퍼지자 주가는 급락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P&G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5.3달러(3.49%) 하락한 146.76달러에 마감했다. 올 들어선 3.2% 하락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