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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보석' 같은 노래들을 은은한 터치로 빛내준 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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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KBS교향악단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과감하게 거의 연주되지 않는 곡들을 선곡했다. 지난 2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스위스 출신 마리오 벤자고가 이끈 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 곡은 슈베르트의 오페라 ‘피에라브라스’의 서곡이었는데 슈베르트가 오페라를 다수 작곡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피에라브라스는 슈베르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오페라였지만 묻혀 버린 작품이다. 두 번째 곡 버르토크의 바이올린협주곡 제2번은 말할 것도 없고, 마지막 순서인 슈만의 교향곡 제2번 역시 지명도는 조금 더 있을지언정 자주 연주되는 곡은 아니다.

이런 곡들을 연주할 때는 명확하고 일관된 접근법이 필요한 법인데 벤자고와 KBS교향악단은 세 곡 모두에서 대동소이한 접근법을 보여줬다. 크고 화려한 음량의 ‘성대한’ 연주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실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은 지휘자의 해석이 오케스트라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거나 양자 사이에 불화가 있을 때 나오기 마련인 소극적인 연주와는 완전히 달랐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관되게 정연하면서도 생생하고 대비가 명확한 연주를 들려줬다. 특히 여린 계통의 셈여림(pp~mp)을 섬세하게 구분했다. 오케스트라가 지휘자의 해석을 자발적으로, 철저히 따르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연주다.

현 상임지휘자인 피에타리 잉키넨 체제에서 KBS교향악단은 지휘자의 요구에 더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이번 공연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겠다. 벤자고의 공연은 큰 그림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는 잉키넨의 스타일과도 좀 달랐다. 차이점은 슈만의 교향곡 제2번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곡은 현악 파트를 중심으로 유난히 현란한 대목이 많고, 웅장하고 성대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대목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적잖은 지휘자가 이 효과를 십분 살리려고 애쓰곤 한다. 하지만 벤자고는 눈부신 빛으로 감상자를 현혹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곡 구석구석을 은은하게 비춰주는 쪽을 택했다. ‘이 곡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지 잘 들어보기 바랍니다’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평소 다소 느슨하다고 여기던 곡의 짜임새가 이처럼 속속들이 알차게 들릴 수 있다니. 진정으로 음악을 그리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해석과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는 앙코르로 연주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천둥과 번개 폴카’에서도 이런 태도를 여실히 보여줬다. 연주 도중 객석 쪽으로 돌아서서 청중의 박수를 유도하는 그의 몸짓은 즐거움과 흥이 넘쳤고, 청중 역시 여기에 자연스럽게 웃으며 동참했다. 흐뭇한 광경이었다.

버르토크의 협주곡에서 독주를 맡은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 역시 이번 공연의 완성도에 적잖이 기여했다. 미도리는 가능한 한 긴 호흡을 유지하면서 일관되게 정성스러운 연주를 들려줬다. 오케스트라의 세심한 반주와도 멋지게 어우러졌다. 앙코르로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제3번’ 중 전주곡 역시 아주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상쾌하고 생동감 있는 연주였다. 잊을 수 없는 밤이 이렇게 또 하나 추억에 덧붙게 됐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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