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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예산 테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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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54조는 한 해 나라 살림 규모를 계획하고 확정하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해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10월 2일)까지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30일 전(12월 2일)까지 심의·의결하도록 한 게 핵심이다. 행정부와 입법부에 예산 편성·집행권과 심의·의결권을 나눠 놓은 것은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다.

그런데 국회 17개 상임위원회의 예산안 예비심사를 보면 헌법 취지가 무색해진다. 더불어민주당은 편성권이 자당에 있는 양 윤석열 정부의 예산안(656조9000억원)을 멋대로 삭감하거나 증액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예산 테러’라고 비판할 뿐 속수무책이다. 민주당은 이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국토교통위 등 6개 상임위에서 소관 예산안을 일방 처리했다. 그저 윤석열표 예산은 일단 쳐내고, 이재명표 예산은 최대한 늘리고 보자는 식이다. 원전 생태계 지원(1112억원),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사업(332억원)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반면 지역사랑상품권(7053억원), 신재생에너지 금융·보급 지원(3920억원), 청년교통비 지원(2923억원) 예산은 증액한 게 대표적 사례다.

헌법 57조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정부 예산안에 없는 항목을 만들거나 증액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에서 삭감액을 되살려야 하는 정부·여당을 압박해 원하는 예산을 얻어내겠다는 의도다. 향후 벌어질 일은 뻔하다. 나라 살림을 둘러싼 정쟁이 격해지고 처리 시한이 임박하면 정치로 포장된 ‘거래’가 뒤따른다. 예산조정소위 내에 법에도 근거가 없는 소(小)소위를 가동해 밀실에서 담합이 이뤄진다.

현 정부 들어 첫 편성했던 올해 예산안은 지난해 법정 시한을 22일이나 넘겨 처리됐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이후 국회가 시한을 지킨 건 두 번뿐이지만 초과한 시간은 짧게는 48분, 길어야 8일이었다. 아무리 예산 심의권이 국회에 있다고 해도 정부 예산안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듯한 거야의 폭주와 몽니는 지나치다.

류시훈 논설위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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