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또는 대학원에서 쌓은 인연은 사회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교수와 연구원은 동문 출신 사업가와 접점을 찾아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때로는 기업에 직접 뛰어들기도 한다. 수도권 스타트업의 풍경이다.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기업이 대학 연구소를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한다.
부산은 지산학(지방자치단체, 산업, 대학) 협력 체계의 개념을 가장 먼저 제시한 도시다. 박형준 부산시장의 주요 공약이기도 한 이 사업을 통해 부산시는 기존 산학협력 체계의 한계점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빠르게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은 대학과 기업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자처하며 다양한 기획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필자는 대학의 교원이자 스타트업 창업자로 부산의 지산학 전략을 지켜보며 그 규모와 지원의 진정성에 놀라움을 느낀다. 무엇보다 기업과 대학 간 소통 창구가 마련된 것에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부산의 지산학 체계에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다. 지역 기업과 대학교수 사이의 친밀도 부족이다. 수도권이나 대전권과는 달리 부산의 지산학 프로젝트는 표면적인 성장은 가능하나 근원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수도권의 스타트업은 대학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공동 연구와 인재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수의 대학을 나온 창업가와 같은 대학 출신 교수 사이의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협업이 공동 기술 개발과 인재 확보로 연결된다. 둘 사이의 ‘혈맹 관계’는 수도권 지역에서 시스템처럼 자리매김했다.
지산학 체계 출범 2년 차를 맞은 부산은 아직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았다. 기업들은 지산학 프로그램을 활용한 사업 과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명목상으로만 지역 대학과 협력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안타깝다. 필자가 직접 교원 창업 기업을 설립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부산에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일단 지산학 체계의 구성 프로그램을 단년 중심에서 다년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학의 여러 구성 요소 중 교수 연구실은 지산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밑바탕이 된다. 연구실이 부산 기업과 1 대 1로 매칭돼 공동 과제를 수행하거나 장기적인 인턴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구조화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
지역 대학 교원과 스타트업 등 다양한 기관 간의 네트워킹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대학과 기업 모두 시 산하 공공기관의 존재와 역할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로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새로운 ‘혈맹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이 될 수 있다. 잘 구성된 교수 간 네트워크와 스타트업 네트워크를 하나로 뭉칠 필요가 있다. 두 집단이 합쳐지면 막대한 시너지를 낼 것임은 확실하다.
기업은 문화를 바로 세워야 한다. 청년이 빠져나가면서 부산 기업은 구성원의 연령이 올라가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기업 문화가 청년 세대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할 때가 많다. 젊은 세대가 늘 정답은 아니지만 새로운 세대와 이전 세대의 공존을 위해서라도 세대 간의 문화를 조화시키는 작업은 필요하다. 지산학 체계에 있어 기업의 문화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병행돼야지만 화학적인 융화가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부산은 인스타그램에서 빛나는, 즉 ‘인스타그래머블한 도시’다.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다. 반짝이는 도시의 매력은 청년이 만든다. 지산학 체계는 부산에서 성장하고 학습하며 일하고 휴식하는 20대와 30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안겨다 줄 제도다. 연구소와 기업, 기업인과 인재 사이의 혈맹 관계 정착을 위한 토양과 싹은 만들어졌다. 이젠 결실을 위한 가꿈이 필요한 때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