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바뀐 걸 안 건 내가 고등학교 입학해서다.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 서무실(지금의 행정실)에 호적등본을 제출하라고 했다.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아 그거 때문에 그러는구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 뒤 고향의 면사무소에서 우편으로 보내온 호적등본에는 중학교 졸업장에 나와 있던 내 한자 이름 조성권(趙誠權)이 조성권(趙成權)으로 가운데 자가 ‘정성 성(誠)’자에서 ‘이룰 성(成)’자로 바뀌어 있었다. 호적등본을 앞에 놓고 주역(周易)에 밝은 아버지는 그리 길지 않게 바꾼 경위를 설명했다.
설명하기 전에 아버지는 “그 입을 다물라. 말을 삼가라”라고 주의부터 줬다. “한양조씨 26세손은 항렬자가 성(誠, 成)이다. 네 사주는 오행(五行)이 모두 들어있다. 흔치 않게 고루 갖춘 사주다. 어느 글자를 취하더라도 이름이 사주를 뒷받침하는 데 문제 될 게 없었다. 자식의 이름을 지으며 고심하다 살아가는 데 더 긴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정성 성(誠)자를 택했다.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는 신념은 지금도 변함없다. 자라는 너를 지켜보니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면서 먼저 말을 문제 삼았다. 패가망신할 말과 말하는 태도까지 5적(五賊)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나무랐던 게 이거다.
첫째 지적이 거짓말이다. 아버지는 거짓말을 싫어했다. 자식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말에 거짓이 드러나면 심하게 책망하고 절교하거나 거래를 끊었다. 몇 번 들키지는 않았지만, 송충이처럼 싫어하는 거짓말이 탄로 날 때면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고 그에 맞는 벌을 줬다. 두 번째는 말이 많은 다언(多言)을 추궁했다. 실언과 변명했던 몇 가지 일을 들어 책망하며 고사성어 ‘다언삭궁(多言數窮)’을 인용했다. 다언삭궁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제5장에 “말이 많을수록 자주 궁색해지니 속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多言數窮 不如守中]”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자기가 내뱉은 말로 스스로 곤경에 빠지는 일이 없게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경계의 뜻을 담고 있다.
세 번째로 아버지는 “모르면서 아는 척 말하는 못된 버릇이 들었다”고 크게 질책하며 이미 습관으로 굳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서둘러 ‘말씀 언(言)’ 자를 빼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경청하는 태도와 표정만으로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면서 예를 든 고사성어가 ‘삼함기구(三緘其口)’다. ‘입을 세 번 봉하다’라는 뜻이다. 입을 다문다는 함구(緘口)는 여기서 유래했다. 주(周)나라의 전설적 시조 후직(后稷)의 태묘(太廟)를 방문한 공자가 사당 오른쪽 섬돌 앞에 금으로 만든 동상을 봤다. 입이 세 바늘이나 꿰매진 동상의 등에 새겨진 글귀다. ‘옛사람의 경계의 말이라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일을 그르친다[古之愼言人也 戒之哉 無多言 多言多敗].’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주(觀周)편에 나온다. 신언(愼言)에 대한 특별한 각성에 영향받은 공자는 훗날 말조심을 당부하는 언행을 많이 남긴다.
네 번째는 말만 앞세우는 태도가 못마땅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선행후언(先行後言)’. 먼저 실천하고 그다음에 말하라”라면서 “이 짧은 한마디는 공자가 번드르르한 말로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제자 자공(子貢)을 꾸짖은 말이다”라고 일러줬다. 마지막으로 남을 흉보는 나쁜 버릇을 꼽았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낮잠을 자라며 “그 사람 앞에서 할 수 없는 얘기를 그 사람 없는 데서 절대 하지 말라”고 엄명했다.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호적을 정리한 면서기가 단기(檀紀) 4287년생에서 고조선을 세운 기원전 2333년을 빼면 서기 1954년생 될 텐데 지금도 이해 못 할 실수를 해 1955년생으로 내가 태어난 해도 바뀌었다. 두 살 터울인 남동생이 어느 날부터 연년생이 되었다. 아버지는 웃으면서 “남들은 하나밖에 없는 사주를 너는 두 개나 가졌다. 언제나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두 사주는 내가 그렇게 해석해서인지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분인 ‘자기 긍정감’을 키워줬고, 나는 그에 따랐다.
말은 입을 떠나면 책임이라는 추가 달린다. 말은 품은 생각을 드러내는 마음의 표현이다. 생각부터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고사성어 ‘삼사일언(三思一言)’이 그 뜻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세 번 생각해 한번 말한다’라는 뜻이다. 말을 막 배우는 손주들에게도 저 고사성어와 함께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할 고귀한 품성이 신중성이다. 말을 삼가는 구체적 실천방안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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