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20일 09:3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최초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유니콘으로 주목받았던 파두가 상장 3개월 만에 '사기' 기업이라는 오명을 썼다. 시가총액 1조5000억원의 '대어'로 화려하게 증시에 데뷔했으나 제로에 가까운 분기 매출을 공개하면서다. 주가는 폭락했고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주관사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태세다. 기술특례로 상장을 승인한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를 항햔 비난의 화살도 쏟아지고 있다. '파두 사태'가 벌어지게 된 배경과 원인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파두 사태'가 집단소송으로 번지면서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지난 15일 파두가 2분기 '실적 쇼크'를 알고도 상장을 강행했다며 투자자들에게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술특례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에게 '실적 악화'는 상장 요건도, 중단 사유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지만 성장 잠재력이 큰 기업에 기회를 주는 것이 기술특례제도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5개월 뒤 터진 '어닝쇼크'
기술특례기업이 상장 후 기대에 못미치는 실적을 낸 것은 파두 뿐만 아니다. 기술특례요건으로 증시에 입성하는 기업은 대부분 적자다. 관리종목 유예기간인 5년 간 제대로 된 실적을 내지 못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파두의 2,3분기 실적이 시장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는 유니콘 기업에 대한 시장의 신뢰와 기대치가 컸고 이런 사태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상장 주관을 맡은 증권사, 상장 적격성을 심사하는 거래소와 금융당국, 수요예측에 참여해 기업의 공모가를 결정하는 기관투자가로 이뤄진 3중 검증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 일이 국내 기업공개(IPO)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인 허점은 신규 상장사에게 허용되는 실적 공시 유예 규정에서 비롯됐다. 파두가 지난 8일 분기 보고서를 통해 실적을 발표했을 때 시장이 크게 요동쳤던 이유는 2분기(4~6월) 매출이 5900만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5개월 뒤인 11월에서야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른 상장기업들이 3개월마다 분기·반기보고서를 통해 실적을 공시하는 것과 비교하면 두 달 이상 '실적 쇼크'를 숨길 수 있었던 셈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159조3항과 160조에 따르면 신규 상장사가 증권신고서를 통해 사업보고서에 준하는 사항을 공시한 경우, 해당 분기의 보고서 제출을 면제해준다. 신규 상장사는 공모금 납입이 끝난 시점부터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이 되는데, 금융감독원은 결산일이 지난 시점에 보고 의무가 발생한 경우 다음 분기부터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증권신고서에 최근 분기 실적이 반영된데다 증권발행실적보고서 등 공모 절차 과정에서 공시해야 할 사항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파두는 공모금 납입 기일이 8월 1일로, 2분기(4~6월) 결산기일(6월30일)이 지난 시점에서 보고 의무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반기보고서를 내지 않고 3분기부터 분기보고서를 제출했다. 반면 납입기일이 6월 30일이었던 이노시뮬레이션은 결산기일 이전 보고 의무가 발생해 8월 14일 2분기 실적을 담은 반기 보고서를 공시했다. 납입기일이 결산일과 하루만 차이가 나도 공시 기준이 바뀌게 되는 셈이다.
정보 비대칭 심화 우려
문제는 이 규정이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할 신규 상장사에 최대 6개월 간 '깜깜이 실적'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는 데 있다. 파두는 2분기 실적 집계가 마무리되지 않았던 지난 6월 30일 1분기(1~3월) 실적을 담은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공개한 1분기 매출은 177억원, 영업손실은 43억원이었다. 지난해 매출은 564억원, 영업이익은 15억원으로 사상 첫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실적이 개선되던 상황이었다.회사 측은 핵심 제품인 SSD 컨트롤러와 완제품 발주가 본격화하고 있어 올해 연 매출 1200억원, 영업이익 1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매출 증가율이 10배에 달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라는 게 당시 증권가의 분석이었다. 파두는 내년 948억원의 당기순익을 올릴 수 있다고 가정하고 상장시 시가총액을 1조5000억원으로 제시했다. 기관 투자가들도 파두의 최근 실적과 기술력, 미래 성장성을 보고 투자했다.
파두는 공모 과정에서 2분기 실적 악화를 인지했으나 시장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아 투자자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 남이현 대표와 이지효 대표는 코스닥 상장일이었던 8월 7일 거래소 상장식에 참석한 직후 미국으로 날아가 고객사와 긴급 논의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3분기까지 공시 의무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추가 수주와 발주 계약으로 만회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반도체 시장이 고꾸라지면서 시장의 불신만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시 사각지대로 인한 정보 비대칭이 심해질 경우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파두에 초기 투자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포레스트파트너스는 실적 발표 직전인 이달 2~8일 주당 3만3000~3만4000원에 보유 주식을 팔아 약 290억원을 벌었다. 파두의 어닝쇼크를 미리 알았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 투자운용사 관계자는 "상장 후 2분기 실적이 공시됐다면 기업도 투자자들도 이 시기 발주가 취소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주식 시장의 충격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결산일과 공모 일정이 겹쳐서 공시할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공모 과정에서 최근까지 집계된 실적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