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남양연구소에서 전산업무를 담당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2심 판결이 나왔다.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했던 1심 판결이 뒤집혔다.
"하청업체가 직접 업무 지시"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38-3부(민지현 정경근 박순영 부장판사)는 현대차 남양연구소 하청업체 직원 A씨를 비롯한 11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현대차가 아닌 하청업체가 원고들을 상대로 작업 배치권을 행사하고 인사평가를 했다"며 "하청업체가 현장대리인인 A씨를 통해 업무 지시사항을 전달했지만 현대차의 지시를 전달하는 것에 불과했다"고 판단했다. 원고들은 2001~2012년 경기 화성시 남양연구소의 하청업체에 입사해 연구소 PC 정비실에서 전산장비 유지·보수 업무를 맡았다. A씨 등은 2020년 "2년 넘게 파견 상태로 일한 만큼 회사에 직접 고용돼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현대차의 구체적인 지휘·감독 아래 근로를 제공했다"며 "전산장비 매각, 고정자산 실사, 네트워크 보안 등의 업무를 할 때 현대차의 지시를 받거나 현대차와 협업했다"고 주장했다.
현대차 측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인 만큼 협력업체에 위탁한 것일 뿐"이라며 "연구소의 주요 업무인 자동차 연구·개발과는 명백히 구별되는 데다 업무상 지휘·명령도 없었다"고 맞섰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는 A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제조업 전산직의 불법 파견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현대차가 하청업체와 위탁이 아닌 파견 관계를 맺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정규직 연구원들의 이메일, 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한 문의나 지원 요청에 수시로 응해야 했다"며 "유지·보수 작업의 시작과 완료 시간도 분 단위로 기록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고들이 남양연구소에 상주하며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들과 업무장소를 공유하고 동일한 직책을 사용했다"고도 지적했다.
연구원의 문의·지원요청도 정보 전달일 뿐
2심 판단은 달랐다. 하청업체가 근로자들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내렸다고 판단하면서 그 외 원고들의 주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차 연구원들의 문의나 지원 요청을 지휘·명령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재판부는 "장애 정비는 업무 특성상 고객과 지속적으로 연락해 의사를 주고받아야 한다"며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객관적 정보를 전달했을 뿐 파견관계를 인정할만큼의 업무 지시는 아니다"라고 봤다. 업무 관리시스템에 하청 근로자들의 업무 접수와 완료 시간이 표시된 것을 두고도 "목표 일시나 업무 지연현황 등이 표시되지 않는 만큼 작업시간이나 속도를 통제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업무 자체가 현대차의 사업에 사실상 포함돼있다"는 원고들의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현대차 총무팀과 같은 공간을 공유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이는 계약에 규정된 업무를 한 것이지 하나의 작업집단을 이뤄 공동작업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전산과 총무에서 모두 결원이 생겼을 때 서로 업무를 대체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