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회사들이 중유를 원료로 도입할 때 내는 개별소비세를 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정유시설이 있는 주요 66개국 가운데 원료용 중유에 소비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뿐으로, 국제 기준에 맞게 세제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 수출 품목 중 두 번째로 많은 석유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조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석유협회는 최근 기획재정부에 원료용 중유를 수입할 때 부과되는 L당 17원의 개별소비세를 면제해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석유 정제 공정에 쓰이는 원유는 원자재로 분류돼 수입할 때 개별소비세를 내지 않는다. 중유는 완제품으로 구분해 개별소비세를 부과한다. 원료용으로 수입한 중유도 원유와 같은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면세해야 한다는 게 협회 측 논리다. 김형건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간재에 세금을 물리면 전체 시장의 경제적 효율성이 나빠진다”며 “개별소비세는 최종 소비자에게 부과해야 하는 세금으로, 생산자가 내는 원료용 중유의 개별소비세는 조세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중유에 과세하면 나프타, 항공유, 아스팔트 등의 원가 상승 부담으로 작용한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도 개별소비세 부과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 의원은 각각 지난 7월과 10월 개별소비세 부과 대상에서 원료용 중유를 제외하는 내용의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는 오는 15일부터 열리는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개별소비세 관련 논의를 할 예정이다. 2001년 도입된 원료용 중유의 개별소비세는 2020~2021년 일몰제가 시행되며 잠시 면제됐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부과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가 내는 원료용 중유 개별소비세는 연간 200억원가량이다.
중유 수입 가격은 원유보다 10~20% 저렴하다. 원료용 중유는 정유 업황이 나빠질 때 정유사가 수익성을 방어하는 ‘마지막 카드’로 인식된다.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BEP) 아래로 떨어지거나 고유가 시기에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해 중유 수입을 늘리곤 한다.
정유업계는 조세 부담을 완화해 정유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중국 인도 중동 등 현지 정유사들이 값싼 러시아 원유 도입을 늘리며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유국의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며 “원료용 중유는 개별소비세를 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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