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대한민국 국민이냐?” “내 돈 어떡할 거야? 이 XX야.”
얼마 전 여의도 증권가에서 개인 주식 투자자들이 출근하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둘러싸고 욕설을 퍼붓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 중년 남성은 어깨를 밀쳤고, 한 여성은 욱일기가 그려진 피켓을 들고 “매국노”라며 고함을 질러댔다. 이 애널리스트는 지난 4월 대표적인 ‘2차전지’ 관련주인 에코프로에 대해 “고평가됐다”는 보고서를 낸 한 증권사 연구원이다. 보고서 발간 후 이 증권사에는 ‘애레기’(애널리스트와 쓰레기 합성어)라는 항의가 이어졌고, 계좌 해지 건수도 급증했다.
요즘 개미 투자자들의 성향은 이처럼 공격적이다. 집단 시위를 하고 협박성 문자 폭탄을 날리는가 하면 직접 찾아가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최근 시끄러운 2차전지 분야에서 개미들의 배타적 성향은 특히 더하다. ‘매수’를 외치는 전문가와 유튜버들을 ‘추앙’하지만 업황을 깎아내리면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낸다. 그 집단 린치의 수위를 따지면 인근 국회의사당 주변에 포진한 ‘개딸’들 못지않다.
정부가 최근 한시적 공매도 금지를 발표하면서 시스템 정비를 이유로 들었지만, 그 이면에도 과격한 언사로 정치권을 압박해온 극성 개미 부대가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공매도 금지 첫날인 지난 6일 2차전지 대표주들이 폭등했지만, 약발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후 3~4일간 급락하며 대부분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개미들은 이제 한술 더 떠 시장조성 역할을 맡은 증권사들의 공매도까지 금지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시장조성자는 주식 관련 상품의 거래 부진을 막기 위해 매수·매도호가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공매도를 막으면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거래에 차질이 생긴다. 과거 금융위기 등으로 세 차례 공매도를 금지했을 때도 시장조성자들은 예외였다. 그런데도 이 ‘극성 불개미’들은 모르쇠로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요구를 하고 있다. 황당한 건 금융당국이 이 요구에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회에 출석해 “시장조성자 등의 공매도를 막으면 우리 시장 발전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했다. 원칙이 한번 훼손되면 걷잡을 수 없다.
고경봉 논설위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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