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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정글서 자란 소녀가 20여년 만에 원시 마을로 돌아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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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독일에서 먼저 출간되고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된 <정글 아이>는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인도네시아 서파푸아 정글에서 5세부터 17세까지 지내며 원시 부족 파유족과 함께 생활한 자비네 퀴글러의 특별한 경험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선교사이면서 언어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5세 때 서파푸아 정글 오지에 들어간 퀴글러는 나무에 기어올라 거미나 애벌레를 잡아먹었고, 활과 화살을 사용해 야생 동물을 사냥했으며, 악어가 있는 강에서 함께 헤엄쳤다.

어린 시절부터 정글은 전혀 낯설거나 위험한 곳이 아니라 친근하면서도 포근하고 안전한 고향 같은 장소였다. <정글 아이>는 정글이라는 낯선 세계에서 지내며 터득한 새로운 삶의 방식, 그리고 다시 문명 세계로 돌아왔을 때 겪어야만 했던 혼란과 갈등을 소개한 책이었다.


<정글 아이>로 문명사회와 원시사회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선사해준 퀴글러가 20여 년 만에 <나는 이제 악어가 있는 곳에서 헤엄치지 않습니다(Ich schwimme nicht mehr da, wo die Krokodile sind)>라는 제목의 신간을 선보였다. 11월 초 독일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이번 신간에서는 이전보다 한층 더 깊고 내밀한 자기 고백이 펼쳐진다.

<정글 아이>를 출간하고 난 후 지난 20여 년 동안 원시사회에서 문명사회로 돌아온 그녀에게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내면의 투쟁이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혔다. “정글에서는 생존을 위해 투명 인간이 되는 법을 배웠지만, 문명 세계에서는 어떻게든 눈에 띄어야만 했습니다. 정글에서는 모든 감각으로 세상을 인식하도록 훈련받았지만, 도시에서는 모든 감각을 억눌러야 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퀴글러는 2012년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 진단까지 받게 된다. 이런저런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아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그녀는 결국 자기 자신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필사적인 모험을 감행한다. 가족을 아버지에게 맡기고 문명사회인 독일을 떠나 자신이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정글로 돌아간 그녀는 그곳에서 원시 부족과 함께 5년 동안 생활하며 그들의 방식으로 삶을 재정돈했다. 놀랍게도 그곳에서 기적적인 회복과 치유를 경험한 퀴글러는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와 기업가이자 사회비평가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한때 다채롭고 마법 같은 세계에 살았습니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고, 끝없는 오늘만 있는 세계입니다. 내 마음은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자유로웠습니다. 과거에 대한 나쁜 기억도, 어떤 절망감이나 두려움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몰랐습니다. 끝없는 현재만이 매 순간 내 삶 주변을 가득 채웠습니다. 모든 호흡은 온화한 날에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과 같았습니다.”

책을 통해 퀴글러는 문명사회를 향한 의심과 비판을 이어간다. ‘원시 부족이 어리석은가? 우리가 어리석은가?’ ‘파괴를 일삼는 문명사회에는 희망이 있는가?’ ‘우리는 과연 여기에서 충분히 행복한가?’ ‘소외감과 고독감은 우리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 등 완벽하게 다른 두 세계를 경험한 저자의 질문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문명 세계와 자연 세계 사이를 부유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헤매는 한 사람의 자기 고백을 통해 무엇이 과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인지 되묻게 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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