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설비투자 의향을 내비치자마자 고위 공무원이 직접 한국에 날아와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어요. 한국에선 가격 결정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부 눈치만 보는 분위기인데, 기업이 맘 놓고 투자할 수 있겠습니까."
7일 만난 식품업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정부의 식품가격 집중관리 방침이 기업인들에게 부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최근 정부는 빵, 과자, 커피, 라면, 아이스크림, 우유, 설탕 등 7개 품목을 콕 찍어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가격 관리에 나섰다. '빵 사무관', '라면 과장' 등 품목별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가격 변동요인을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식품업체들이 가격을 그대로 두고 양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까지 점검키로 했다.
식품업계에선 "이 같은 정부 방침이 기업 경영활동을 침해하는 반시장적 정책"이라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우선 7개 집중관리 품목 선정 기준이 명확치 않다는 불만이 많다. 정부는 물가가중치와 서민체감도가 높은 품목을 선정했다는 설명이지만, 실제 가중치가 높고 물가 상승률이 가파른 신선식품이나 의류 부문은 집중 관리 품목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월 소비자물가지수를 품목별로 보면 과일이 전년동월비 24.6% 올라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부문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의류 및 신발 물가지수의 전년동월비 상승률은 8.1%로, 빵 및 곡물(6.4%) 보다 더 많이 올랐다. 심지어 라면(-1.5%), 스낵과자(-0.9%)는 오히려 물가지수가 하락한 품목이며 설탕의 경우 협회 차원에서 이미 내년 초까지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공표한 바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7개 품목을 살펴보면 이미 가격이 올랐거나, 동결을 공표해 내년 총선까지 크게 변동이 없을 만한 이른바 ‘만만한 식품’을 찍은 것 같다”며 “행정 편의주의적 선정기준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외국계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하고 있는 것도 국내 기업들에겐 상대적인 차별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다. 맥도날드는 정부가 외식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한 지난 달 26일 평균 3.7% 가격 인상을 단행했고,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의 자회사인 오비맥주는 하이트진로에 앞서서 주요 맥주 제품 출고가를 평균 6.9% 인상했다.
정부가 겨냥한 품목 중 과자, 아이스크림 등의 경우 기호식품으로, 서민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줄지 의문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식품업계에선 정부의 과도한 반시장적 간섭이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업계의 영업이익률이 5%안팎에 불과하고 직원 연봉수준은 상장사 중 최하위 수준인 것은 제품 가격에 대한 기업의 자율결정권이 침해당하는 영향도 있다”며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키는 근시안적 가격 통제로 K푸드를 육성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을 놓칠까 우려된다”고 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