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100엔당 원화 재정환율은 장 마감 시간인 오후 3시30분 기준 879원93전을 기록했다. 전날 같은 시간 기준가 892원30전에서 12원37전 내렸다. 이날 원·엔 환율은 외환시장 개장 시점에 886원30전으로 출발해 낙폭을 키웠다. 한때 877원까지 내리는 등 큰 폭 하락했다.
원·엔 환율이 870원대로 내려온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 2월 2일(879원3전) 후 15년9개월 만에 처음이다. 하루 중 낙폭(-12원37전)은 지난 8월 21일(-14원3전) 후 약 70일 만에 가장 컸다.
원·엔 환율이 고꾸라진 것은 엔화의 글로벌 약세가 반영된 영향으로 파악된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지난달 31일 BOJ가 수익률곡선 제어(YCC) 정책의 상단을 연 1.5%까지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연 1.0%를 유지하고 ‘이를 넘어가는 것을 용인하겠다’고 발표하는 데 그쳤다”며 “달러당 엔화 환율이 152엔까지 올라갔고, 이후에도 150엔 밑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긴축 종료 신호로 달러 약세가 나타난 여파도 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20원50전 하락한 1322원40전으로 장을 마쳤다.
원·달러 8개월 만에 최대폭 하락
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기록된 원·달러 환율 낙폭(20원50전)은 하루 새 29원40전 내린 지난 3월 23일 후 약 8개월 만에 가장 컸다.원·달러 환율은 7원90전 내린 1335원에 출발한 뒤 장중 낙폭을 키웠다. 장중 한때 달러당 1317원40전까지 밀렸다가 장 막판 소폭 올라 1322원40전에 마감했다. 전날도 환율이 14원40전 하락한 것을 감안하면 이틀 새 34원90전 내렸다. 2거래일간 하락폭 기준으로 올 들어 가장 컸다. 지난해 11월 11~14일 2거래일간 51원60전 내린 후 최대 낙폭이다. 원·달러 환율이 1320원대로 내려온 것은 지난 9월 18일(1324원40전) 후 처음이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 것은 달러화가 약세로 전환해서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하락하고, 금리 인상 종료 기대가 커지면서 위험 선호가 회복됐다”며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것도 환율 하락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연 5.25~5.50%인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 2일(현지시간)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0.12%포인트 하락한 연 4.669%를 기록했다. 최근 연 5%를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하락 폭이 크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지난해 중반 이후 완만해졌다”고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적 발언을 한 것도 영향을 줬다.
달러 약세가 나타난 가운데 원·엔 재정환율이 동반 하락한 것은 위험 선호에 양국 통화가 다르게 반응한 영향으로 파악된다. 원화는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반면 달러화와 엔화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양국의 긴축 정도 차이가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본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다가 최근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을 통제하는 YCC 정책의 금리 기준을 연 1.0%로 유지하되, 이를 넘는 것을 용인해주는 방식의 소폭 긴축으로 전환했다. 한국이 그간 기준금리를 연 3.5% 수준까지 높인 것에 비하면 긴축의 정도가 덜하다는 평가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