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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더 낼지, 언제 받을지 다 뺀 채…연금개혁 국회로 떠넘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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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7일 발표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은 핵심적인 수치가 모두 빠졌다는 점에서 ‘맹탕 개혁안’이란 지적이 나온다. 국회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 모수개혁 관련 결정을 정부 몫으로 미뤘는데, 정부가 다시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연금개혁이 공회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연금 개혁을 회피하지 않겠다’던 정부 공언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체적 ‘수치’ 국회로 공 넘겨
보건복지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지난 3월 현행 제도(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 수급개시연령 65세) 유지 시 국민연금은 2041년 적자 전환하고 2055년 고갈될 것이란 재정계산 결과를 내놨다. 이후 재정계산위는 지난 19일 보험료율 12%·15%·18%, 소득대체율 42%·45%·50%, 수급개시연령 66세·67세·68세, 기금운용수익률 0.5%포인트·1%포인트 상향을 담은 24가지 연금개편 시나리오를 정부에 권고했다.

이미 이때부터 ‘연금개혁이 산으로 간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재정계산위는 70년 뒤까지 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더 내고 늦게 받는 안’에 무게를 뒀다. 이에 따라 보험료율을 15%로 올리고, 연금수급연령은 68세로 늦추며 기금운용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는 방안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복지부는 실제 될지도 불투명한 ‘기금수익률 1%포인트 상향’만 연금개편안에 담았을 뿐 모수개혁의 핵심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연금지급시기는 수치를 명시하지 않았다. 게다가 연금수급연령에 대해선 “계속고용 여건이 성숙된 이후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현 정부에서 연금지급시기를 늦추는 것은 물 건너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이달 말 국무회의에서 연금개편안을 최종 확정한 뒤 31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복지부가 낸 이날 개편안은 아무 성과 없이 끝난 문재인 정부의 5년 전 개편안보다 후퇴한 수준이란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12월 ‘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5%’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 ‘현행 유지’ ‘현행 유지+기초연금 월 40만원으로 인상’ 등 네 가지 개편안을 냈다. 이는 ‘사지선다안’이란 비판을 받았고 여기에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놓아 결국 연금개혁이 무산됐다.
○‘무책임한 개혁안’ 지적 많아
정부가 이날 낸 연금개편안에는 일부 새로운 아이디어가 담기긴 했다.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연령대별로 차등화하고 ‘덜 내고 더 받는’ 확정급여방식(DB)을 ‘낸 만큼 더 받는’ 확정기여방식(DC)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노후에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청년층의 목소리를 반영한 아이디어다. 이스란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보험료율 차등 인상과 관련해 “(가령) 40~50대는 5%를 5년 만에 올리고, 20~30대는 5%를 20년, 15년에 올린다면 매년 올려야 하는 인상 폭이 나이 많으신 분들은 더 크고, 젊으신 분들은 더 작게 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재정 여건이 악화되면 연금액을 삭감하는 ‘자동안정화장치’가 논의 주제로 제시된 것도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가 빠지면서 ‘무책임한 개혁안’이란 지적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도 지난 6월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국민이 혼란을 느끼지 않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안의 수를 최대한 적게 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날 발표된 연금개편안은 이런 취지와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국회에서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국회가 연금개혁을 제대로 논의할 가능성은 희박한 게 현실이다. 이미 국회 연금특별위원회는 논의 시한을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뤘다. 연금개혁 논의에 관여해온 한 대학교수는 “연금 고갈에 대비해 대수술을 해야 하는데 연금개혁이 폭탄 돌리기가 됐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내년 4월 총선 이후나 내년 6월 새로운 국회 구성 뒤에야 연금개혁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연금개혁 의지는 확실하다”며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이 제각각이고 전문가들도 간극을 못 좁히는 지금으로선 정부 단일안을 내기보다 공론화를 통해 국민들의 여론을 더 모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정환/허세민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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