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18일 09:4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얼마 전에 한 중견기업에 ESG 관련 상담 요청으로 방문을 한 적이 있다. 해당 기업은 대기업에 전자부품 제조 및 공급을 주업으로 하고 있는데, 최근 납품처인 대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수입 바이어들도 ESG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이에 어떻게 체계적으로 대처해야 하는지를 설명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좀 더 자세히 물으니 해당 기업은 전자부품을 여러 곳의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고, 또한 유럽 등지에 직접수출도 하고 있는데 ESG 관련 정보의 내용이나 형식이 요청하는 기관마다 제각각이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또한, 평가기관들의 평가 기준도 제각각이고 평가 시기 또한 평가기관이 정한 시기로 국한되어 있어서 연중에 ESG 활동 개선을 하더라도 해당 개선 활동이 평가점수에 반영되려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해서 적시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었다.
필자도 현재의 ESG 제도하에서 이러한 문제가 적잖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기업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해결책은 무엇일까?
우선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은 주요 이유를 꼽을 수 있다.
① ESG 관련 정보를 요청하는 기관마다 요구하는 정보의 내용과 형식이 다르다.
② 수출기업은 수출지역(EU, 미국 등)마다 요구하는 정보의 내용이 다르다.
③ ESG 개선 활동을 하더라도 한참 후나 평가점수에 반영된다.
④ 중견ㆍ중소기업들은 자체적인 ESG 경영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⑤ ESG 정보를 체계적으로 입력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
⑥ 사내에 ESG 전문인력이 없는 경우가 많고 채용하기에도 재정적 부담이 있다.
⑦ ESG 경영에 대한 임직원 교육이 부족하여 정보수집 시 협조를 구하기 어렵다.
위 상자 안에서 ①~③번은 ESG 정보 일반 공시기준(GRI, TCFD, SASB 등)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산업별 이니셔티브[전자(RBA, RMI), 화학(TfS), 제약(PSCI), ICT(GeSI), 의류(SAC) 등]가 요구하는 공시사항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별로 수입기업에 요구하는 정보도 다양한데, ESG 공시 및 평가 전문기업인 esgbook에 따르면 전 세계 국가별로 요구하는 ESG 규정과 보고 지표는 2023년 10월 현재 약 42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위 상자 안에서 ④~⑦번의 경우 ESG 공시나 법령에 대해 체계적인 대응을 준비해 온 대기업에 비해 중견ㆍ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어서 전문인력을 채용한다거나 자체적인 ESG 종합관리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등의 ESG 활동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해 나갈 방법은 없을까?
위에서 제기된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하려면 다음과 같은 해결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각종 공시기준, 산업별 이니셔티브, 그리고 국가별 ESG 규정과 보고 지표를 정부의 통합 컨트롤타워가 분석하고 국문으로 만들어 중견ㆍ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별 기업들은 각종 기준 등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② 탄소배출량 측정, 인권 실사 보고 등을 원활하게 하려고 공급망 기업이 큰 노력을 쏟아붓지 않고도 쉽게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여야 한다. 즉, 공급망 기업들은 이러한 공시 통합 플랫폼에 접속하여 관련 정보를 입력하기만 하면 다양한 공시기준과 규정 및 보고 지표 등의 요구사항을 만족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잘 설계하여 배포하여야 한다(One Source Multi publishing).
③ 향후 각종 입찰 선정기준이나 신용평가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이는 ESG 평가점수에 대해 개선 활동을 열심히 수행했을 때 수시로 신청하여 반영할 수 있도록 적시성 있는 평가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④ 중소ㆍ중견기업의 ESG 경영체계 구축 및 임직원 교육을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되 컨설팅과 교육의 기준이 국제적인 공시ㆍ평가 기준과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기업의 ESG 활동과 평가결과가 국내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를 위해, 국제적인 수준의 교육을 받은 전문가 양성이 절실하다.
필자는 가끔 기업관계자들로부터 ESG는 잠깐 내리다 마는 소나기 같아서 곧 열풍이 수그러들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ESG가 지속 가능 경영으로 용어의 변화가 있을지는 몰라도 기후공시 의무화 시대가 도래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더욱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추세는 더 가속도가 붙을지언정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듯하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우리는 ESG를 피해야 할 소나기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우리 기업의 99%에 달하는 중견ㆍ중소기업의 ESG 경영을 가속하고 국제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힘과 지혜를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