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의 신작 ‘굿닥터’(사진)는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글을 미국 ‘브로드웨이의 전설’ 닐 사이먼이 각색한 작품이다. 연극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름이지만 “지금 시대에 맞는 유머 코드는 아닌 것 같다” “2% 부족하다”는 관객의 반응이 많았다.
연극은 19세기 체호프가 쓴 글을 1973년 사이먼이 새롭게 엮은 작품이다. 체호프의 단편을 각색한 작품과 사이먼의 오리지널 작품 등 총 8개의 짧은 이야기로 이뤄진 옴니버스극(독립된 이야기 여러 개를 하나의 주제로 엮은 극)이다. 원작이 쓰여진 지 100년이 훌쩍 넘은 것은 물론 각색한 지도 50년이 지났다.
바보 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 ‘재채기’의 주인공 이반은 연극을 보러 갔다가 자신의 최고 상관인 장관의 머리에 실수로 재채기를 하고 만다. 어떻게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더 큰 실수를 저질러 버리는 소심한 캐릭터다.
그밖에 치과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경험 없는 조수와 겁 많은 사제(‘치과의사’), 19세 생일을 맞은 아들에게 선물로 매춘부에게 데려가는 아버지(‘생일선물’), 실직한 남편의 퇴직금을 애꿎은 은행에 찾아가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는 여성(‘의지할 곳 없는 신세’) 등은 각자의 에피소드에서 코미디를 완성해나간다.
연극 속 ‘바보’들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하다. ‘재채기’의 이반은 장관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미안한 마음에 성가시게 사과를 계속한다. 또 다른 에피소드 ‘가정교사’의 줄리아는 보수를 제대로 주지 않으려고 억지를 부리는 고용주 앞에서도 생글생글 웃으며 오히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굿닥터’의 김승철 연출은 “인간애가 짙게 밴 여운이 깊은 작품”이라며 “때로는 웃으면서, 때로는 안타까워하면서 보다 보면 각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그 속의 인물에게 연민이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진지한 코미디’”라고 설명했다.
작품 곳곳에 체호프를 향한 작가의 존경도 드러난다. 연극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이끄는 작가(배우 김수현 분)는 체호프를 연상케 한다.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는 작가가 글쓰기를 포기하려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관객에게 하나둘씩 펼쳐 보이는 구성이다. 무대 전체가 체호프의 머릿속 말풍선인 셈이다.
다만 이 작품이 동시대성을 확보했느냐에 대해선 물음표가 생긴다. 체호프의 글을 잘 모르는 관객이라면 연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체호프라는 글자를 지우면 19세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8개의 에피소드 모두가 현대 관객에게 매력적인 코미디로 다가갈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공연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다음달 12일까지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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