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도장 찍기 전까진 어떤 안이 들어갈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이달 말 국회에 제출하기로 한 국민연금 개혁안의 윤곽이 잡혔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보건복지부 담당자의 답변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자문기구인 재정계산위원회를 가동하며 연금개혁안을 논의해 왔다. 핵심 국정과제로 1년 가까이 논의했는데도 정부안 발표를 불과 열흘가량 앞둔 시점에 방향조차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데드라인’이 다가올수록 초점이 모이는 여타 정책과 달리 연금개혁은 정반대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12월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연금개혁에 대해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해내야 한다”고 한 발언이 무색하다. 최대한 가짓수를 줄인 합리적 개혁안을 정부에 제시하겠다던 재정계산위는 지난달 18개 시나리오를 소개하는 식의 ‘맹탕 보고서’를 냈다. 특정 안을 권고하는 것이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이 작용한 듯한 결과였다. 그나마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받는’ 개혁은 안 된다는 다수 위원의 공감에 따라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안은 초안에서 배제했지만 정부의 부정적 기류에 최종 보고서에선 되살리기로 했다.
최근엔 급기야 ‘숫자 없는 개혁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일단 보험료 인상률 등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담지 않고 기초연금, 퇴직연금까지 아우른 구조 개혁 방향만 밝히는 것이다.
핵심인 보험료율을 높이는 모수개혁 논의는 일단 미루고 보는 안이다. 이는 국회가 연금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겠다며 출범시킨 연금특위가 지난 2월 “지금은 모수개혁을 논의할 상황이 아니다”며 책임을 정부에 떠넘긴 것과 판박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연금개혁이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6월까지도 대통령실이 “교육·노동·연금 3대 개혁에 표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도전할 것”이라며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막상 개혁안 발표 시점이 다가오자 표 득실에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금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선 정부가 명확한 방향성과 수치를 담은 단일안을 도출해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할 수 없고 사회적 공론화도 어렵기 때문이다. 네 가지 개혁안을 내놓고선 시간을 끌다 결국 책임을 회피한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이젠 더 끌 시간도 없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