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첫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한양아파트에 서울시가 시공사 선정 절차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재건축 사업시행자인 KB부동산신탁이 작성한 시공사 선정 입찰공모지침서에 위법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면서다. ‘상가’ 소유주가 재건축에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신속통합기획안을 근거로 상가를 사업구역에 포함시킨 게 문제가 됐다. 서울시는 앞서 지난 6월 서울 압구정3구역 설계자 선정에서 시 지침 위반을 이유로 재공모를 지시한 바 있다. 서울시가 주요 재건축 단지 수주전에 직접 개입하면서 과열 양상에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상가’ 동의 건너뛴 시공사 선정은 무효
16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12일 KB부동산신탁·영등포구 관계자와 면담하고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시공사 선정 입찰공모지침서에 도시정비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로 다음 날인 13일에는 구에 시공사 선정 절차를 주민 총회 전까지 중단하라는 공문을 전달했다. 영등포구는 KB부동산신탁 측에 내용 파악을 위한 자료를 요청했다. 공모지침이 현재 정비계획과 다른 내용(신속통합기획안)을 토대로 작성됐다는 게 요지다. 여의도 한양 재건축은 기존 588가구를 허물고 최고 56층, 5개 동, 아파트 956가구와 오피스텔 128실 규모의 국제금융 중심지 지원 단지로 재건축하는 프로젝트다.서울시가 우선 문제삼은 것은 아직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신속통합기획안에 근거해 상가를 구역에 포함시킨 형태로 입찰지침을 냈다는 점이다. 여의도 한양상가는 소유주가 한 명으로 KB부동산신탁을 재건축 사업시행자로 선정하는 데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시행자로 지정되려면 토지등소유자의 4분의3 이상, 동별 소유자 2분의1 이상, 토지면적의 3분의 1 이상의 소유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한양상가는 제외된 상태로 KB부동산신탁이 작년 8월 사업시행자로 지정 고시됐다.
반면 지난 1월 확정된 한양아파트 신속통합기획안에서는 상가가 구역에 포함됐다. 하지만 상가 소유주가 동의하지 않고 있어서 주민 동의율 요건(50%)을 채우지 못해 구에 정비계획도 제출하지 못한 상태다. KB부동산신탁이 이같은 절차를 건너 뛰고 시공사를 선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획안은 제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용도지역을 상향하는 전제로 작성됐는데, 아직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용도지역 상향이 확정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문제가 됐다. 이번 조치로 여의도 한양아파트는 상가의 동의를 얻어내 신속통합기획안을 토대로 정비계획을 제출하거나, 상가를 제척하지 않으면 시공사 선정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정비계획 변경 후 시공사 선정 권고"
신속통합기획이 주민 동의를 거쳐 서울시 심의까지 통과하면서 ‘정비계획’으로 확정돼야, 신속통합기획안으로 시공사 선정 입찰을 할 수 있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가령 지난 5일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서 신속통합기획안을 바탕으로 정비계획이 확정된 여의도 시범은 내년 시공사 선정을 계획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굳이 시공사 선정을 서둘러서 확정되지 않은 신속통합기획안이나 기존 정비계획으로 설계안을 짰다가 나중에 다시 설계안을 만들어야하는 비효율을 겪을 수 있다”며 “정비계획 변경 고시 이후에 시공사 선정을 진행토록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한편 신탁 방식 재건축의 경우에도 시공사·설계자 입찰 전에 지방자치단체의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속통합기획 등 공공지원 방식의 정비사업은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를 내기 전에 자치구의 사전 검토를 받아야하지만, 신탁 방식은 예외다. 이에 서울시는 후속 조치로 신탁 방식 재건축도 설계자·시공사 입찰공고를 낼 때 자치구의 사전 검토를 받아야한다는 내용을 담은 도시정비조례를 연내 시의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올 들어 신속통합기획이 진행 중인 주요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설계자·시공사 선정 절차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 앞서 서울시는 압구정3구역에 대해 신속통합기획안과 압구정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에서 정한 용적률(300%)을 위반한 희림건축이 당선됐다며 재공모를 지시했다. 용산구 한남2구역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서울시 고도지침(90m)을 위반한 대안설계(118m)로 대우건설이 당선되자, 서울시는 높이·용적률을 정한 정비계획 변경을 전제로 한 대안설계를 금지하기로 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