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축적보다는 빠른 성과와 눈에 띄는 결과가 미덕인 시대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뚝심 있게 자신의 가능성에 승부를 걸어온 성악가가 있다. 세계적인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51·사진)이다.
사무엘 윤은 지난 13일 서울 삼성동 포니정홀에서 열린 ‘국제무대 데뷔 25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저는 오랜 시간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성악가”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인간문화재에 준하는 ‘궁정가수’ 칭호를 받고,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주연을 맡은 스타 성악가인 그의 현재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는 서울대 성악과 재학 시절 콩쿠르 수상 경력이 없는 ‘미운 오리’였고, 유학 시절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오랜 시간 암흑 같은 시간을 보냈죠. 성악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걱정이 들곤 했지만 언젠가 나를 보여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죠.”
1998년 그의 첫 아이가 태어날 무렵, 빛이 찾아왔다. 이탈리아 토티 달 몬테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다. 이 콩쿠르는 수상자에게 정규 오페라 무대의 배역을 주는 특전을 제공했다. 사무엘 윤은 콩쿠르 우승으로 얻게 된 아홉 번의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를 계기로 쾰른극장 무대에 서게 됐고, 단역부터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세계적인 바그너 오페라 페스티버린 바이로이트 축제의 주역을 맡을 만큼 스타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돌연 한국행을 택했다. 쾰른극장 종신 성악가로 임명돼 클래식의 본고장에서 안정적으로 노래하며 살 수 있는 삶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서울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화려한 무대에서 주역을 맡아 돋보이는 삶이 50세 이후에도 의미 있는 삶일까 자문했어요. 그동안 제게 과분했던 도움과 행운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울대가 그 통로를 만들어 준 셈이죠.”
후학 양성은 일부다. 다양한 공연을 기획해 클래식 대중화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자처하고 나섰다. 유럽에 비해 영세한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삶과 비전을 오는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단독 콘서트 ‘어둠에서 빛으로’에서 보여준다는 각오다. 1부는 슈베르트 브람스 가곡, 2부는 바그너 모차르트 도니체티 등의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준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