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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 PPT로 일하는 한국…젠슨 황은 어떻게 보고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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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해당 국가의 상황에 맞게 조직을 운영하며 현지화된 조직문화를 구축하지만, 그럼에도 기업은 본국의 문화적 특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미국 기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미국식 경영은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할 말은 하는 자유로운 토론 문화를 기본으로 한다. 물론 미국 기업에서도 강력한 리더가 있으면 의견 표명에 대한 걱정이 생길 수 있지만, 대다수 기업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다. 일본식 경영은 데이터 중심의 증거 기반 경영을 강조하는 게 그 특징일 것이다.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분석하느라 시간이 너무 소요돼 또다시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식 경영의 도드라진 특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파워포인트 장표(슬라이드)로 일한다는 것이다. 의사 결정자에게 몇 마디 말로 설명하고 재가받을 수 있는 일도 어찌 됐건 장표를 한두 장은 만들어서 보고해야 하는 것이 일상이다.

정확한 기원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한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파워포인트를 사용해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 초중반 외국계 컨설팅 회사로부터 전략 컨설팅을 받기 시작한 때로 추정된다. 해외 명문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한 컨설턴트들이 일필휘지로 그려낸 장표 한 장은 복잡한 현상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었기에 모호한 상황에서 의사 결정을 해야 했던 경영진을 매료시켰다. 문제는 고객을 설득해야 하는 업의 특성상 중시됐던 컨설팅 회사에서의 파워포인트 사용이 글로벌 기술 혁신의 최전선에서 경쟁하며 빠르게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한국 기업 전반으로 퍼져나갔다는 점이다. 더욱이 기업에서 고성과를 내는 핵심 인재일수록 또는 조직의 명운이 걸린 전략적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부서에 있을수록 시장 동향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직접 발로 뛰며 고객을 만나 의견을 듣거나 자사 제품 정보를 학습하며 업무 역량을 개발하기보다는 오늘도 어김없이 현황 보고를 위한 파워포인트 장표를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한국식 경영은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영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 법인에서 근무하는 현지 채용인들은 한국 본사에서 내려오는 장표 작성 요청에 혀를 내두르고는 한다.

글로벌 혁신 기업들은 그렇다면 어떻게 파워포인트 없이 일할 수 있을까? 정보 교환과 의사 결정은 일상적으로 이메일과 아웃룩을 사용하거나 슬랙과 같은 협업툴을 활용한다. 관련 내용을 문서화해야 하는 경우 워드 문서에 업무와 관련된 내용을 상술하고, 다른 사람들이 해당 정보를 활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이를 매뉴얼화한다. 그리고 파워포인트 장표는 발표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만 만들고 복잡한 도형을 활용해 구조화하기보다 텍스트나 이미지를 중심으로 구성한다.

최근 세계에서 가장 좋은 주식이라고 평가받는 회사인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은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최신 정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기 위해 일반적인 현황 보고를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교하게 정리된 보고서들이 자기에게 닿을 때쯤이면 이미 정보가 현장의 본질과 진정성을 반영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엔비디아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그에게 직접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현황’에 대해 이메일을 보낼 것을 주문한다. 매일 아침 젠슨 황은 그렇게 받아든 100통이 넘는 이메일을 읽으면서 오늘의 비즈니스 현장과 밀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구성원의 업무 몰입을 연구하는 ‘인게이지먼트 이론’은 한 조직의 구성원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중요한 원칙이 구성원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구 사항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일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조성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매일같이 책상머리에 앉아 장표를 그리며 소중한 업무 시간을 소위 가짜 노동으로 채우는 것보다는 자신의 업무와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최고 의사결정자에게 직보하고 함께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식 경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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