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정주영 창업회장님이 의대에 갔다면 지금의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은 물론 경제 강국인 한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1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요 그룹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이 전쟁 직후 폐허였던 한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올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과잉 규제, 강성 노조, 포퓰리즘 입법, 높은 세금 등이 최근 기업가정신을 꺾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인재가 도전보다 안정을 추구하며 의대로 몰리고 있다”며 “저성장 등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기업가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쟁 폐허서 경제 강국 세운 기업가정신
손 회장에게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에 관한 기억은 선명했다. 손 회장은 호암이 1969년 설립한 삼성전자에서 일했고 삼성화재에서 부회장까지 지냈다. 그는 “회장님은 온 정신을 다 바쳐 매일매일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며 “당시에도 제일제당, 삼성물산 등이 성장하고 있었지만 전자공업까지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호암은 전자 사업을 시작하면서 일본 기업인을 만나 얘기를 듣고, 도쿄에 있는 서점을 다니며 관련 서적을 모조리 읽었다고 손 회장은 전했다. 호암의 기업가정신은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을 알린 ‘도쿄 선언’으로 이어졌다.
손 회장은 기업가정신을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으로 정의했다. 그는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창업회장님은 창의적 사고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말했다. 여기에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용기가 더해진 것이 기업가정신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한국이 1950년 전쟁 후 폐허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것은 기업가정신 덕분”이라며 “창업회장님들은 부강한 한국을 미래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도전과 혁신을 지속했다”고 평가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가정신이 더 확산해야 한다는 게 손 회장의 분석이다. 그는 “과학기술 혁신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많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연구개발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바이오 등 첨단기술 발달이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손 회장은 그러나 한국에서 기업가정신이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수많은 인재가 도전과 혁신보다 편안과 안정을 추구하며 의대와 로스쿨 입학을 선호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병철, 정주영 창업주가 의대에 갔다면 지금의 한국이 있을 수 있겠냐”고 일갈했다. 그는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조차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부동산 사업부터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기업가정신 높이도록 제도 개선해야
손 회장은 그렇다고 청년을 탓해선 곤란하다고 했다. 기업가정신을 떨어뜨리는 외부 요인이 주변에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반기업 정서에 기반한 과도한 규제, 취약한 조세 경쟁력, 경직적 노동시장이 기업을 일으키려는 의지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머리 아프게 기업을 왜 하냐’는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것이다.손 회장은 규제부터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원입법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국회의원이 포퓰리즘에 빠져 과잉·졸속입법으로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의원입법에 규제영향평가제를 도입해 입법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개혁도 주요 과제로 꼽았다. 불법 파업에 대해선 더욱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했다. 손 회장은 “지난 정부에서 노동권은 크게 강화됐지만 사용자의 방어권은 그대로였다”며 “사업장 점거를 금지하고 파업 때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엄격한 해고 규제를 완화하고 파견 허용 대상도 확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특히 야당이 추진하는 노조법 개정안(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제한 등)은 ‘파업 만능주의’를 부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입법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행 2년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 사고 감소 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과도한 처벌에 따른 기업 부담만 가중시켜 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손 회장은 높은 상속세와 법인세율도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한 중견기업 사장이 찾아와 ‘상속세율이 너무 높아 평생 키운 기업을 매각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며 “상속세(최고 60%), 법인세(최고 24%)를 각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 22%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