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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엄마들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한 이유 [어쩌다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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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치동의 소위 탑10 이라는 영어학원의 설명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반차까지 써가며 참석한 유일한 이유는 아이에게 잘 맞을 것 같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추천이 있었고, 설명회에 참석한 사람에게만 레벨 테스트의 신청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설명회에선 학원의 커리큘럼과 장점 등의 내용도 있었지만 인상 깊었던 점은 엄마들의 불안감을 기가 막히게 파고 든다는 것이었다. 영어를 먼저 끝내고, 초등 고학년부터는 수학을 달리며, 중학교때 이미 고등학교 입시과정을 끝낸다는 말로만 듣던 대치동 시스템을 직접 체감했다. 처음 접했던 이 설명회는 나에겐 불편한 경험이었다.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을 것 같은 내 상황과 맞물려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와중에 내가 더 불편하다고 느낀 건 설명회 공간에 있는 엄마들 사이의 묘한 긴장감 때문이었다. 수수한 차림이든 혹은 신경을 쓴 모습이든 명품백을 들고 참석한 엄마들을 보며 왠지 동창회나 결혼식에 갈 때 신경이 쓰이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상하게 그 자리가 숨막히고 불편해 그 이후의 설명회는 남편에게 양보했다.

학기가 시작되고 몇 달 만에 겨우 마련된 반 엄마들 모임에서였다.
학구열이 높은 한 엄마와의 대화 중에 국,영,수,과학, 태권도와 피아노를 소화하고 있는 아이의 스케줄에 놀랐고, 저학년 때 수학을 나중에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초3 때 후회하는 엄마들을 너무 많이 봤다며, 무조건 수학이라며 저녁부터 밤까지 수학을 한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알고 보니 이미 그 친구는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수상까지 했다는 얘기를 다른 엄마를 통해 또 알게 되었다.

불안해졌다. 분명 유치원에 다닐 때 특히 7세 때 레벨테스트 때문에 라이팅이 많아지는 데다가 친구들과 놀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느꼈기에 초1이 되면 무조건 많이, 자유롭게 놀게 해주리라 했던 다짐이 자꾸만 내가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미 두 자릿 수, 세 자릿 수 곱셈을 하며 올림피아드를 나가는 아이, 영어보다는 수학을 좋아해 학원을 보냈는데 다른 아이들이 다 곱셈을 하고 있어 어쩔 수없이 아이에게 곱셈을 시킬 수 밖에 없었다는 또 다른 아이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부랴부랴 곱셈 책을 사고 수학 학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시켜도 돼???”

남편에게 종종 묻곤 하는 질문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영어학원 외에는 방과 후 로봇, 줄넘기와 주말 아침 테니스를 치는 것 외에 학원을 다니는 곳이 없었고 그 외도 일일 학습지를 겨우 하는 정도 외에 아이는 자유롭게 놀이를 하는 시간이 많았다.

주로 늘 종이접기를 하거나 레고를 만들고 책을 읽었다.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곤 했다. 종이접기도 참 야무지게 잘도 했지만 레고로 만드는 것들을 보면 못 만드는 것이 없었다.

사실 나는 책읽기와 아이가 상상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힘, 그리고 천천히 본인의 욕구를 참고 무엇을 해 나갈 수 있는 힘과 많지 않지만 매일매일 해야 할 숙제, 가방싸기, 정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비교적 그 습관들은 잘 갖춰줘 있고 또 매일매일 아이랑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높은 수준의 수학이나 영어 작문, 스피치, 논술 같은 사교육과는 무관했다. 아이는 창의적이었고 놀이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힘이 탁월했고 마음이 따뜻했다. 친구들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들의 모임을 가면 불안함은 증폭된다. 내가 아이에게 해주지 않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아이, 또 저만큼 앞서가 있는 아이들의 얘기는 항상 들리기 때문이다. 특히 엄마의 열성이 어느정도 통하는 초 저학년은 특히 그렇다.

마음 속에 불안감은 엄마들과 오며 가며 만날 시간이 적어진 방학이 오며 그 불안감은 사라지진 않았지만 점점 엄마들과 마주치는 빈도가 줄어든 만큼 강도도 약해졌다.

아이는 학교생활을 잘 하며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 나가야 할 시간에 맞춰 등교를 준비하는 것이 많이 좋아졌고 스스로 가방을 싸며(물론 잊고 빼먹는 것도 있지만) 책을 좋아하는 성향은 여전헤 온갖 역사와 과학 상식을 꿰뚫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특별히 엄청나지 않게 나이에 맞는 연산과 국어실력을 보였고 여전히 레고로 무언가를 만들고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충분히 훌륭했고 충분히 잘 크고 있었다. 수학 선행을 수년 째 하고 있어 수상을 하는 (물론 선행을 한다고 다 그렇게 되지도 않지만) 아이와 비교하면 아이가 많이 부족해 보일때가 있고 그런 아이의 소식, 그렇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만날 때면 잦아들었지만 마음 한 켠에 항상 남아 있는 나의 불안의 불씨는 또다시 올라올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선행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는 아니기에 적절하게 필요한 학습에 대한 인풋도 필요하지만 곱셈을 척척 해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불안감을 투영하며 다그치거나 부랴부랴 수학 학원을 보낼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다잡아본다.

초 저학년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들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남의 집 얘기나 다른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잘하는 지에 대해 의연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닐지.

아침에 달리기를 몇 등할 것 같냐고 묻는 아이가 (5명씩 하는 경주에서)본인이 2,3등을 하며 한 번에 줄넘기를 몇 개씩이나 하는 줄 아느냐고 자랑하는 아이에게 열심히 노력하니 한 두개 하던 줄넘기를 이렇게 많이 하게 되었다며 눈을 맞추며 아이의 꾸준했던 노력을 칭찬해주며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지.

어떤 친구와 친한지, 또 친구와 속상한 일은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들어주며, 아이의 레고 세계관에 동참해서 같이 반응해주는 것이 나중에 정말 달려야 할 때 달릴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박소현 님은 올해 8살 아이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기자,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 브랜드 빌딩 비즈니스 스타트업 블랭크코퍼레이션 커뮤니케이션 담당 프로로 제 2의 인생을 설계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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