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일 땐 땅이라도 파라”
재정 지출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국내총생산(GDP) 계산식부터 살펴보자. GDP는 소비+투자+정부지출+순수출(수출-수입)로 나타낸다. 편의상 순수출은 빼고 소비, 투자, 정부지출만 생각해보자. 경기가 안 좋다는 것은 소비와 투자가 부진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선 정부라도 돈을 써야 경기 침체를 완화할 수 있다.정부 역할을 강조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땅을 파고 돈을 묻은 뒤 다시 파내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경기 침체기엔 정부가 땅이라도 팠다 덮었다 하면서 돈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재정 지출은 정부가 지출한 금액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해 국민 A에게 100만원을 준다고 해보자. A는 이 중 50만원을 B의 가게에서 쓴다. B는 이 50만원 중 25만원을 C의 가게에서 쓴다. C도 B로부터 받은 돈을 소비한다. 이렇게 돌고 돌면 정부가 지출한 100만원보다 훨씬 큰 지출 효과가 경제 전체에 나타난다. 재정 지출이 최초 지출 금액보다 큰 폭으로 총수요를 늘리는 것을 승수효과라고 한다.
승수효과는 국민이 추가로 얻은 소득 중 얼마를 소비하느냐, 즉 한계소비성향이 얼마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한계소비성향이 50%라면 100만원의 재정지출은 200만원의 효과를 낸다. 한계소비성향이 80%로 높아지면 재정지출 100만원의 효과는 500만원으로 커진다.
재정 지출 늘면 민간 투자 위축
재정 지출 효과가 이렇게 나타나기만 한다면 경제가 어려워질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재정정책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려면 어디선가 돈을 구해 와야 한다. 정부가 돈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중앙은행을 동원해 새 돈을 찍거나,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돈을 찍어서 뿌리면 물가가 오른다. 증세를 좋아할 국민은 없다. 그나마 쉬운 방법이 국채 발행이다.그런데 정부가 국채 발행을 늘리면 채권시장의 공급이 증가해 채권 가격이 하락한다. 채권 가격과 이자율은 반대로 움직인다. 이자율이 오르면 빚을 내는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 기업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 이렇게 재정 지출 증가로 이자율이 상승해 투자가 감소하는 것을 구축효과라고 한다. 정부 지출이 민간 투자를 밀어낸다는 의미에서 밀어내기 효과라고도 한다.
구축효과가 발생하면 재정 지출에 따른 총수요 증가분이 일부 상쇄돼 경기 부양 효과가 약해진다. 재정 지출을 통해 오른쪽으로 이동했던 총수요곡선이 구축효과로 다시 왼쪽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고령화로 재정지출 효과 약화
재정 지출을 늘리면 단기적으로는 총수요를 증가시켜 경기 부양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를 위축시켜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지 않고 재정 지출만으로 경제를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재정 지출의 승수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2020년 발표한 ‘거시계량모형 구축 결과’ 보고서에서 정부 지출을 1조원 늘리면 GDP가 8500억원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쓴 돈만큼의 효과도 거두지 못한다는 얘기다.
고령화도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한국은행은 작년 12월 ‘인구구조 변화의 재정 지출 성장 효과에 대한 영향 분석’에서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포인트 높아지면 재정 지출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효과가 5.9%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고령층은 노동시장 참여율이 낮고 한계소비성향도 작아 정부가 돈을 풀어도 고용과 소비를 끌어내는 효과가 약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공공 지출이 경제 성장과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공공 투자와 교육은 잠재성장률을 높이지만 연금과 보조금은 잠재성장률을 낮춘다”고 했다. 정부가 돈을 쓰더라도 성장 동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현명하게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