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으면 연초에 헬리오시티라도 살 걸 그랬어요."
서울 강남권 핵심 대단지 아파트 분양 일정이 줄줄이 밀리면서 청약을 기다렸던 수요자들이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초 집값 하락한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강남권에서는 공급폭탄까지 예정됐기 때문에 반등하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입주 아파트 매매가는 물론 전셋값까지 상승하는데다, 주요 아파트들의 분양은 내년으로 미뤄지고 있다.
강남 아파트 대표적인 대단지인 가락동 헬리오시티는 20억원대를 회복한지 오래다. 2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의 실거래가는 19억2500만~21억3000만원에 분포됐다. 저층만 19억원대일 뿐 대부분의 주택형이 20억원대로 뛰었다. 연초 16억~17억원대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뚜렷하게 반등한 모습이다.
잠실동 엘스는 상승세가 더 가팔랐다. 연초 전용 84㎡가 18억~19억원대에도 거래가 나왔지만, 지난달에 실거래된 매매가는 22억9500만~24억3000만원였다. 리센츠와 트리지움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면서 각각 24억원, 22억원대를 회복했다.
기대했던 입주장 효과도 없었다. 강남권 아파트값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개포동(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6702가구)과 반포동(원베일리, 2990가구)에서 기대했던 입주장 효과도 사라졌다. 대규모 입주가 이뤄지면서 매매가와 전셋값 동반 하락이 예상됐지만, 상황은 반대로 흐르고 있다.
더군다나 예정됐던 분양이 줄줄이 미뤄지지고 있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는 분양가 상한제 규제를 받는다. 그만큼 합리적인 가격에 강남 입성을 기대했던 청약통장 고점 대기들은 애가 타고 있다. 연초만 하더라도 많게는 10개단지까지 쏟아질 것으로 것으로 예상됐지만, 올해 분양된 아파트는 아예 한 곳도 없다.
내년으로 분양일정이 확실히 밀린 아파트만도 4곳이다. 청담동 '청담르엘'(청담삼익·1261가구)과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신반포15차·641가구), 방배동 '래미안 원페를라(방배6구역·1097가구)'와 '아크로 리츠카운티'(방배삼익·141가구)다. 나머지 예정됐던 단지들도 연내 분양을 점치고는 있지만, 불확실한 상황이다.
강남권 아파트가 일정이 연기되는 이유는 '미룰수록 분양가를 높게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강남3구는 분양가 상한제로 분양가를 통제받고 있다. 반면 강남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분양가 규제가 풀리면서 분양가는 치솟고 있다. 최근 비(非)강남권에서의 분양가도 3.3㎡당 4000만원을 넘기면서 전용면적 84㎡를 기준으로 15억원에 육박했다. 수도권 아파트의 분양가마저 전용 84㎡에서 10억원을 훌쩍 넘긴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분양가 상한제에 적용되는 기본형 건축비가 1㎡당 194만3000원에서 197만6000원으로 1.7% 오른다고 밝혔다. 그동안 강남 최고 분양가는 2021년 6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로 3.3㎡당 5650만원이었다. 입주중인 이 아파트의 시세는 3.3㎡당 1억원을 훌쩍 넘었다. 분양가와 시세가 갈수록 벌어지다보니 조합들은 최대한 분양을 미루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일정을 미루는데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조합은 분양 일정을 미루는 과정에서 내홍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 분양을 예정했던 단지들은 공사가 이미 진행중인 상황이다. 조합측이 자금조달 없이 분양만 미루다보면 건설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과거 둔촌주공 아파트(현 올림픽파크포레온)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설계 변경을 요구하거나 조합 집행부가 교체되면서 사업에 무게감이 커지기도 한다.
청담르엘이 대표적이다. 청담르엘은 지난 7월 조합원들에게 모델하우스를 보여주고 분양절차를 밟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분양 과정에서 조합 내 갈등이 생겨 조합장이 사퇴했다. 현재 직무대행 체제에 있는 조합은 오는 10월13일 새 조합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조합이 내홍을 겪는 사이 2021년 12월 착공한 이 아파트는 바닥 기초 공사가 끝났다. 현재 지상으로 골조공사가 이미 진행중이며, 공정률은 30%가량으로 알려졌다.
쟁점은 '한강조망권'과 이에 따른 '공사비'다. 일부 조합원이 한강조망권 추가 확보를 위해 거실 창호폭을 확장하고 벽을 이동해 달라는 내용을 골자로 설계변경을 요구했다. 이를 둘러싼 공사비 증액과 공사일정 등이 갈등의 불씨가 됐다. 여기에 바로 옆에 아파트가 리모델링을 추진하면서 일부 가구가 한강조망권이 예상과 달라진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러한 배경에 조합장까지 교체되는 상황이 되면서 조합내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강남권만 분양가를 통제받는 상황에서 공사비는 계속 오르고 분담금 규제가 해결되지 않다보니 일정만 밀리고 있다"며 "완전히 후분양으로 돌아서지 않는 이상 조합원을 만족시켜줄 분양가가 나올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단순 일정 지연이 아닌 다툼으로 인한 지연"이라며 "조합과 시공사 모두 시간과 비용 부담 증가로 끝난 제 2의 둔촌주공 사태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