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택 삼정KPMG 상무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요즘도 국내 유수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 사업 논의를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가상자산 시장이 침체기인 탓에 겉보기엔 별 움직임이 없어 보이지만 여전히 코인·NFT·토큰증권(ST) 등 가상자산 신사업 논의가 활발하다는 설명이다.
수년간 가상자산 발행·거래기업 회계 자문
최 상무는 국내 가상자산 회계 전문가로 손꼽힌다. 회계 기준과 지침 등 공식 잣대가 전혀 없었던 수년전부터 가상자산 관련 회계 자문을 하면서 사안별 실전 노하우를 쌓은 덕분이다. 게임기업 위메이드의 위믹스를 비롯한 각종 국내 기업의 가상자산 프로젝트가 그의 손을 거쳤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의 회계자문도 수년간 해왔다. 한 대형 IT 플랫폼기업의 가상자산 심리 내부 검토에도 참여했다. 올들어선 삼정KPMG의 가상자산 태스크포스(TF)에서 가상자산 회계처리 부문을 이끌고 있다. 삼정KPMG는 지난해 가상자산TF를 만들었다. 각 분야 기업들의 자문 수요가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삼정의 정보통신사업본부에서 정보기술(IT) 분야 기업 회계를 주로 맡았던 최 상무도 이 기간 TF에 합류했다.
이 TF는 회계감사를 비롯해 컨설팅·재무자문·세무 등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최 상무는 “가상자산 회계와 세무 관련해 ‘트랙 레코드(실적 기록)’이 ‘넘버원’인 전문가들을 모았다”며 “가상자산 사업 관련 전략 담당자, 발행·운영 관리 체계 구축 전문가 등도 합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TF는 가상자산 관련 사업에 대한 A부터 Z까지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상자산 발행 전략, 발행 후 자산 관리와 통제, 회계처리, 세금 신고·납부 등을 아우른다. 그는 “가상자산거래가 해외에서 이뤄지는 경우 세금 납부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을 묻는 기업들이 많다”며 “최근엔 기존 사업의 밸류체인(가치사슬)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NFT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는 기업들의 문의도 늘고 있다”고 했다.
"회계 검토 제대로 못 하면 사업 무용지물"
기업이 가상자산 사업을 키우기 위해선 회계적 검토부터 꼼꼼히 해둬야 한다는 게 최 상무의 지론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래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가상자산의 의미가 없어져서다.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회계·세무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개별 사업뿐 아니라 기업 주가 등이 휘청일 수도 있다. 그는 “가상자산은 원칙적으로 익명성과 탈중앙화를 표방하는데, 이 가치가 잘못 작동하면 기업에 자칫 상당한 리스크(위험)가 될 수 있다”며 “탈중앙화와 기업 관리라는 두 측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주는 것이 회계법인의 역할”이라고 했다.
“많은 기업들이 가상자산에 대한 회계 처리에 큰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거래 이력을 남기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이는 기업 회계에 있어선 '독’이에요. 향후 가상자산 관련 회계 지침이 나오면 기업이 뒤늦게 사업 방식을 확 바꿔야 할 수도 있고요. 이때문에 감사 용역을 하면서 내부 통제절차를 제안하고, 적시에 회계 기록을 남기도록 자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 상무는 “그간 가상자산은 새로운 거래 유형이라 회계 처리에 어떤 논리와 판단 기준을 적용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다”며 “기업과 당국 사이를 오가며 함께 답을 찾아간 사례가 많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당국 등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관련 제도 마련도 거들고 있다. 한국회계학회 가상자산위원회 위원, 금융감독원 가상자산 전문가 간담회 위원을 맡고 있다
삼정KPMG는 가상자산 사업지원 TF를 차차 확대할 예정이다. 금융감독당국 등이 가상자산 회계 지침을 확정 발표할 예정인 등 제도 정비에 들어간 만큼 관련 사업 자문을 원하는 기업도 속속 늘어날 것이란 판단이다. 최 상무는 “그간 마케팅 용도로만 주로 쓰인 NFT(대체불가능한 토큰) 시장도 차차 확장될 전망”이라며 “메타버스 등 기업이 제공하는 플랫폼이 커지면서 가상경제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제도와 사업이 고루 정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보 불균형을 해소해야 투자도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가상자산은 발행 기업 백서 정도를 제외하면 정보가 매우 제한적으로 공개됩니다. 국내 가상자산 발행 기업은 재무제표에 대한 외부 공시 의무도 없어 더욱 그렇습니다. 현재 회계 감독지침을 통해 상장사 등에 대해선 공시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해외 종속회사, 재단 등을 통해 가상자산을 발행한 회사들에 대해서도 별도 공시 체계를 구축해 투자자가 정보의 불균형속에서 피해를 보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 상무는 “가상자산 시장에 대해 회계 제도 등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시기엔 투기 수요가 주를 이뤄 시세 변동이 심해지고, 이에 따라 제도도 규제 위주로만 운영되는 악순환이 생긴다”며 “최근엔 기업과 개인이 합법적 테두리에서 가상자산 시장에 참여하려는 수요가 많은 만큼 사업을 제도권 안에 편입해 시장을 키울 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도 무분별하게 가상자산을 발행하거나 장밋빛 전망만 홍보해선 안된다”며 “시장이 잘 성장하려면 참여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