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검찰 정기인사 전후로 중간 간부급인 차·부장검사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사직 행렬에 로펌들도 촉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전력 보강을 위한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검찰이 꾸준히 수사강도를 높여온 금융, 공정거래 등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물들이 최우선 영입대상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예상 깨고 쏟아진 퇴직 행렬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달 검찰 정기인사 전후로 30여명의 차·부장검사가 사의를 밝혔다. 이번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이 가능한 기수였던 사법연수원 30기를 비롯해 주요 차·부장검사가 포진한 31~34기에서 퇴직자 대부분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그룹의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 관련 의혹을 수사했던 강지성 부산지검 서부지청장(30기),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송금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김형록 감사원 파견 차장검사(31기), 국내 첫 여성 공안검사인 서인선 서울북부지검 인권보호관(차장검사?31기), 검찰에서 유일한 강력수사 분야 블랙벨트(1급 공인전문검사) 보유자인 천기홍 대구지검 인권보호부장(32기), 검찰 내 북한 전문가로 손꼽히는 장소영 서울서부지검 형사2부장(32기) 등이 대표적이다.
당초 전망과 달리 중간 간부들의 줄사표가 나왔다는 평가다. 검찰 안팎에선 지난해 정권 교체 후 대대적인 인사로 퇴직자가 쏟아져나왔던터라 올해는 그만두는 검사가 비교적 적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예상 밖 결과로 검찰의 허리급 수사인력의 전문성 약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특수통’이 영전하는 흐름이 이어지자 윤 대통령과의 인연이 없던 중간간부들이 검찰을 떠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취업제한을 받지 않는 상황인 점도 사직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검사장 이상 검찰 고위간부는 퇴직 후 3년간 연매출 100억원 이상 로펌에서 일할 수 없다.
'금융통' 영입 1순위
로펌업계에선 검찰 중간간부들의 연이은 이탈로 ‘스카우트 대목’이 열린 분위기다. 현역에서 물러나자마자 즉시 영입 가능한 검사 중에선 가장 베테랑들이 인력시장에 등장해서다. 차·부장검사는 취업제한 시기가 지난 전직 고위간부와 더불어 검찰 출신 인물 중 1순위 영입대상으로 꼽힌다.벌써부터 영입 성공 소식도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은 최근 나욱진 전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장과 최우영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장을 영입했다. 나 전 부장검사는 국제 형사분야 전문가로 법무부 국제법무과와 국제형사과 등에서 근무했다. 최 전 부장검사는 특수수사 전문가로 금융감독원 법률자문관을 지내는 등 금융분야에서도 경험을 쌓았다. 율촌은 이번 영입과정에서 다른 대형로펌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두 사람을 새 식구로 맞은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선 올 가을에는 특히 금융수사 경험이 많은 인물에 ‘러브콜’이 몰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수사 강화로 로펌들의 일감이 대거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서다. 검찰은 지난해 5월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현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을 복원한 데 이어 지난 7월엔 가상자산합동수사단을 신설하는 등 금융범죄 수사에 힘을 쏟아붓고 있다. 금융당국 조사단계에서 주가 조작 등 불공정거래에 따른 부당이득액의 두 배까지 과징금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내년부터 시행되는 등 규제도 강화되는 흐름이다. 블록체인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산업이 계속 생겨나는 만큼 법률자문 수요 역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공정거래 전문가도 꾸준히 영입 후보에 올라있다. 기업들이 민·형사 사건에 휘말리는 분야 중 하나인데다 수사도 점점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검찰총장의 고발요청권을 적극 행사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없어도 공정거래 사건을 직접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2조3000억원대 입찰 담합 혐의로 8개 가구업체 임직원 12명을 기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담합범죄에서 자신신고하면 기소를 면제해주는 리니언시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공정위와의 협력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이외에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로펌들의 새 먹거리로 부상한 산업재해 분야와 검찰이 수사강도를 높여가는 기술 유출 및 영업비빌 침해 분야 등도 로펌들이 전력을 강화하려는 영역으로 거론된다. 한 대형로펌 대표변호사는 “예상보다 많은 베테랑 검사가 그만두면서 관심을 보였던 인물들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영입전략을 통해 전력을 보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