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어느 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부랴부랴 짐을 싼 뒤 전남 진도로 향했다. 그는 2박3일 동안 진도 장터와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진돗개 30마리를 사들였다. 이후 10년 동안 확실한 순종(純種) 진돗개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진돗개는 잡종견이고, 한국 토종개도 아니다”는 국제사회의 편견에 맞섰다. 삼성 안내견 사업이 30주년을 맞으면서 그의 ‘애견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진돗개는 한국에서 일찌감치 천연기념물 53호(명칭 진도개)로 지정됐다. 하지만 세계견종협회는 확실한 순종이 없는 만큼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선대회장이 순종 진돗개 보존 사업에 발을 들인 이유다.
그는 진돗개 순종을 얻기 위해 진도에서 들여온 30마리를 150마리로 늘렸다. 진돗개를 사들인 지 10년 만에 마침내 순종 한 쌍을 얻었다. 사육사와 종일 연구하고 외국 전문가를 수소문해 연구한 결과다.
이 선대회장의 노력은 곧 결실을 봤다. 1982년 세계견종협회는 진돗개 원산지를 한국으로 등록했다. 2005년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애견협회인 영국 견종협회 케널클럽에 진돗개를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 왕실의 지원을 받는 등 콧대 높던 케널클럽은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 진돗개를 ‘품종 및 혈통 보호가 잘돼 있는 견종’으로 평가했다.
이 선대회장은 1975년 한국에 진돗개 애호협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진돗개경연대회도 열었다. 1993년부터는 세계적 애견대회인 크러프츠도그쇼를 후원했다. 2013년 이 대회에서 진돗개 체스니가 처음 출전해 입상하기도 했다.
이 선대회장의 애견 행보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무렵에 더 주목받았다. 올림픽을 전후해 한국을 놓고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국제 사회에 퍼졌다. 그는 당시 국제동물복지기금(IFAW) 임원진을 초청해 애완견 연구센터와 안내견학교 신축 현장 등을 견학시키며 이 같은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힘썼다.
이 같은 행보는 각별한 ‘반려견 사랑’에서 비롯됐다. 중학생 때부터 반려견을 기른 그는 직접 목욕시키고 방에서 같이 잘 만큼 애정을 쏟았다. 한때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200마리 이상의 반려견을 돌보기도 했다. 그의 행보는 이른바 ‘덕업일치’(좋아하는 일과 생업의 일치)의 표본으로 통하기도 한다. 그는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를 통해서도 덕업일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취미생활이라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깊이 연구해 자기의 특기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거기에 취미를 통해 남을 도와줄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다”라고 적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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