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인 챗GPT에 물었다. ‘상사병이 무엇인가요?’ 그랬더니 ‘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로 인한 병’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답변이 나왔다. 챗GPT가 한국어에 능통하지 않아서 생긴 해프닝이다. 상사병은 국어사전에 ‘남자나 여자가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이라고 기술돼 있다. 정말 사랑으로 병이 생길까? 이는 연구로 입증된 사실이다. 9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사망한 뒤 한 달 내 남성은 2배 이상, 여성은 3배 이상 사망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런 사망률의 증가는 사건 발생 한 달 후 정상화됐다고 한다. 배우자나 가까운 사람의 사망은 100점 만점인 스트레스 점수에서 무려 100점으로 가장 큰 스트레스다.
인류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이런 연관성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사랑의 이모티콘은 ‘♡’이고, 영어로 하트(heart)는 심장인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상사병뿐만 아니라 ‘가슴 아픈 일’이라는 언어 표현도 대표적인 예다. 자연재해에 의한 심리적 충격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1994년 미국 LA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다. 평소 관상동맥질환에 의한 급성 심장사 건수는 평균 4.6명이었는데 지진 발생 당일 24명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심장질환은 동맥경화에 의해 발생한다. 가슴 아픈 일이나 다양한 스트레스는 술이나 담배 의존도를 높일 수 있고, 우울증도 유발할 수 있다. 이 모든 요인이 동맥경화에 의한 심장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위험 요인은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흡연, 비만, 운동 부족 등이다. 유럽 심장학회에서는 심장질환 위험 요인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를 평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시한다. 우울증을 평가하기 위해 “우울하세요? 무기력하거나 재미가 없으세요?”라고 자문해 보면 좋다. 직무 혹은 가정 내 스트레스를 평가하기 위해 “직장에서 일할 때 업무 요구가 감당할 만하세요? 직장에서 당신의 일에 비해 보상은 충분한가요? 배우자랑 큰 갈등은 없나요?”라고 물어보면 좋다. “혼자 사세요? 아플 때 도와줄 분이 있으세요?” 같은 질문은 사회적으로 격리돼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증오나 분노도 심장질환의 위험을 높이는데 “작은 일에 자주 화가 나세요? 다른 사람의 행동이 자신을 불편하게 하나요?” 등으로 표현된다. 외로움, 분노, 사회적 지지가 없을 때 심장질환 위험이 높아지므로 이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자연재해나 사고로 가까운 사람을 잃는 가슴 아픈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9월 29일은 세계심장연맹이 제정한 심장의 날이다. 심장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가슴 아픈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와 지지가 필요하다.
조정진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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