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잡아두는 것도 잔인한 일이다. 그 전형을 보여준 사람이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김 대법원장이 2020년 5월 22일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국회에서 탄핵안이 거론되던 당시 임성근 고등법원 부장판사와의 면담에서 한 말이다. 이런 내용의 녹음파일이 공개되기 전까지 김 대법원장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녹음파일엔 “사표 수리, 제출 그런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는 발언까지 담겨 있었다. 사법부 독립보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눈치를 보는 김 대법원장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이번에는 민주당이 사의를 표명해 교체가 확정된 이종섭 국방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 결정 전까지 몇 달간 장관 직무가 정지된다. 대통령은 탄핵 소추된 장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기존 장관을 해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장관을 임명할 수도 없다. 통상 야당의 장관 탄핵은 교체를 압박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미 그만두겠다는 마당에 탄핵을 강행한다는 것은 오히려 사임이나 해임을 차단하는 꼴이 돼버린다. 이러니 정략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더욱이 국방부 장관 거취는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다.
헌법상 국무위원 탄핵은 요건이 엄격하다. 분명한 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야 한다. 민주당은 이 장관이 수해 복구 활동 중 순직한 해병대원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는데, 구체적인 증거가 나온 게 없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민주당 주도의 탄핵이 헌재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된 게 불과 50일 전이다. 지난 2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2차 소환조사를 이틀 앞두고 탄핵안이 강행 처리되면서 장관 직무가 167일이나 정지됐다. 그사이 수해 대처와 새만금 잼버리 준비에 차질이 빚어졌다. 일언반구 사과도 하지 않은 민주당이 힘으로 또다시 장관 탄핵안을 추진한다면 안보 공백을 초래해 적을 이롭게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류시훈 논설위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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