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예술이 소수의 부자를 위한 복지라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나온 데이터는 전혀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7~8월 열린 오스트리아의 대표 음악 축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분석한 글의 요지다. 이 음악 축제는 25만 장(2017년 기준)에 달하는 티켓의 97%가 팔렸고, 무료 행사엔 5만여 명이 몰려들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창출한 현금 수입만 1억8300만유로(약 2600억원)에 달했다. 축제를 보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관광객의 체류 기간은 보통 6~7일. 그 덕분에 2800여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여기서 발생한 세금 수입만 7700만유로(약 1100억원)에 이르렀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고급 문화·예술 축제가 창출하는 경제 효과, 이른바 ‘아트 이코노미’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사례다.
높아진 K아트 위상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이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제조업 강국’일 뿐이었다. 문화·예술이 높아진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수준인지에 관해선 의문 부호가 달렸다. 하지만 ‘코로나 3년’을 거치면서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 바뀌었다.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타고 K콘텐츠가 퍼져나가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트렌디한 나라’로 떠올랐다. 오는 6~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프리즈 서울’과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 글로벌 미술계의 시선이 쏠리는 것도 이런 위상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국내 미술계의 시각이다.
이번 행사엔 수만 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행사가 처음으로 함께 열린 지난해엔 약 8만 명이 참여했다. KIAF 관계자는 “작년엔 국내외 관람객이 너무 많이 몰려 참가 갤러리들이 당황했을 정도로 대중적 관심이 폭발했다”고 말했다. 김주현 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은 “외국인의 한국 관광과 관련해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쇼핑, 음식에 이어 예술에 관심이 급증했다는 점”이라며 “아트 투어의 수요층도 미국, 유럽 위주에서 브라질, 키르기스스탄 등 다양한 나라의 부유층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아트 인플루언서’ 대거 방한
선진국들이 아트 이코노미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로 인한 낙수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우선 프리즈 서울과 KIAF 기간에 맞춰 세계 미술계의 거물들이 대거 방한할 예정이다.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마크 글림처 영국 페이스 대표를 비롯해 컬렉터로 유명한 홍콩 뉴월드개발그룹의 오너 3세인 에이드리언 청 등 손에 꼽을 만한 인플루언서만 20여 명에 달한다.프라다가 김지운 영화감독과 협업 작품을 선보이는 등 해외 명품업체들도 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그 덕분에 잠실 시그니엘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종로 포시즌스호텔 등 글로벌 미술계 관계자들과 아트 투어 참가자들이 주로 묵는 호텔은 9월 중순까지 모든 객실이 꽉 찼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서울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예약은 3개월 전부터 동이 났다”고 말했다.
‘쉐이크쉑’ ‘에그슬럿’ 등의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는 SPC는 올해 아트페어 행사에 대비해 주요 식자재 주문을 1.5~2배씩 늘렸다. SPC 관계자는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를 잡은 프리즈 서울, KIAF를 앞두고 관련 직원들이 총출동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범정부적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이제 막 꽃피우기 시작한 ‘K아트’의 잠재력이 만개하기 위해선 범정부적 차원의 기획·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문화·예술계 한 관계자는 “문화·예술계에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DMZ(비무장지대)에서 아트 페어를 열면 대박 날 것이란 아이디어도 나온다”며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내 부서별 칸막이가 워낙 높아 이런 행사를 종합적으로 기획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도슨트(미술관·박물관의 전문 해설가) 등 관련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주현 연구원은 “요즘은 해외 부자들이 ‘한국의 특정 예술가와 전시회를 열 수 있게 연결해달라’고 먼저 요청하는 사례도 많은데, 주요 특급 호텔의 컨시어지조차 전문 인력이 없어 어디에 연락하는 게 좋을지 모를 때가 많다”고 했다.
박동휘/이미경/송영찬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