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 전문가인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56·사진)은 “미국으로의 수출이 대중(對中) 수출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난달 31일 세종 집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22% 수준이었던 대중 수출 비중이 올 들어 19%대로 떨어진 반면 대미 수출 비중은 이 기간 약 16%에서 18%로 높아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원장은 “과거엔 중국이 이웃에 있는 대국(大國)으로 한국 경제에 기회 요인이 됐지만, 영원히 그럴 순 없다”며 “가파르게 성장하던 과거 중국의 모습은 이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수출을 확대하려면 결국 국내 기업들이 초격차 기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다가 지난 7월 KIEP 12대 원장에 취임했다.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KDI 국제정책대학원 기획처장, 한국국제통상학회(KATIS) 회장을 거쳤다.
▷KIEP는 지난 5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2.6%, 중국 성장률은 5.5%로 전망했습니다.“다음달 수정 전망 발표 때 세계 경제 성장률은 높이고 중국 성장률은 낮출 예정입니다.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를 가정한 5월과 달리 현재 중국 경기는 둔화하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안 쓰고 저축을 늘리고 있습니다. 주택 구매 심리는 위축됐고, 청년 실업률은 높아지고 있죠. 지방정부 부채까지 전반적으로 리스크가 많습니다.”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의 디폴트 위기는 어떻게 봅니까.“단기적으로 보면 시스템 리스크로 커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앞서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인 완다그룹도 유동성 위기를 겪었지만, 자회사를 매각하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비구이위안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자산을 팔 수 있습니다. 다만 하방 리스크는 여전히 높습니다. 지방정부 부채가 많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어렵습니다.”
▷중국의 경기 부진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성장률에 확실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한국처럼 제조업 비중이 크고 중국과의 연관성이 큰 나라인데 경기가 좋지 않습니다. 만약 중국 정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자금을 차단하고 외국에 있는 채권을 회수한다면 우리나라 채권 시장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현재 국내 외국인 채권 시장에서 중국인 투자 규모가 15% 정도입니다. 위안화에 동조화하는 경향이 강한 원화도 지속해서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정부는 무역수지가 흑자 기조에 들어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7월 반도체 수출 물량지수가 1년 전보다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인공지능(AI) 관련 투자가 확대되면서 반도체 수요가 커지고, 메모리 반도체 가격도 동반 상승할 수 있습니다. 수출 호조를 보였던 전기차 수요는 둔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경기가 견조하기 때문에 대중 수출 둔화를 대미 수출이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1~7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중은 18%로 중국(19.6%)과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단기간 내로는 아니지만 미·중 수출 비중이 역전될 수 있습니다.”
▷중국 의존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출을 확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결국 초격차 기술을 통해 세계를 선도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미국 유럽연합(EU) 등 전 세계가 수출 대상이 돼야 합니다. 수출은 수익성 여부에 따라 기업이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는 초격차 기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반도체 인력 양성 등을 통해 기업을 지원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중국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이 일본의 장기 불황과 닮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중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비슷하게 갈 것으로 평가하기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일본은 1990대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꺼졌지만, 중국은 아직 도시화가 진행될 여지가 있습니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저 효과를 봐야 합니다. 7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에 비해 0.3% 하락했는데 6월에 비해선 0.2% 상승했습니다. 작년엔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높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본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일본은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고용 상황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임금이 인상되면서 제품 가격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엔화 약세로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 물가 압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일본 정부가 통화 긴축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달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최근 미국 고용시장을 보면 비농업 고용자 수 증가폭이 지난달까지 3개월 연속 20만 명에 못 미쳤습니다. 고용 둔화를 고려해 일단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허세민/박상용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