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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곤의 행정과 데이터과학]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그리고 20년 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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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발표한 지 20년이 흘렀다. 2012년부터 시작된 혁신도시로의 공공기관 이전 계획은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따른 인프라 구축, 유입 인구 증대 등으로 지역경제가 살아나리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그 기대는 달성됐을까?

먼저 유입 인구를 살펴보자. 지방 이전에도 2020년부터는 서울·경기·인천의 수도권 인구가 다른 지방 전체의 인구를 추월하기 시작했고 그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21년 10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 효과 및 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이후의 혁신도시 인구는 수도권으로부터 유입된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으로부터 유입됐다. 오히려 수도권으로의 인구 순유출이 시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수도권과 지방 간 인구 불균형을 개선하려는 정책이 도리어 혁신도시 주변 지역의 쇠퇴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역인재 활성화는 어떨까? 정부는 ‘지역인재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공공기관에 해당 지역 초·중·고를 졸업해도 지역인재로 보지 않고 해당 지역 대학 출신 인재만 채용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이전 지역 대학의 인재’만을 채용하는 폐쇄적 현상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전기공학 전공생이 전남 나주에 있는 공공기관에 취업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실제로 2020년 국정감사에서 제시된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 현황’에 따르면 특정 지역대학 출신 신규 채용이 한국전력은 55.4% 한국가스공사는 77.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방소멸, 균형발전이라는 당위적 근거를 반복하기보다는 공공기관 1차 지방 이전의 편익이 비용보다 훨씬 크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현재 방식의 지방 이전이라면 지역이나 학벌과 관계없이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공공기관의 기본 책무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공공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지역의 폐쇄성을 공고히 하며, 민간기업과의 서비스 경쟁에서 뒤처지게 할 위험이 크다.

저성장과 국제 경쟁력 악화라는 도전에 직면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 때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지방을 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 정부는 지방의 지식기반산업을 활성화하고, 일하고 싶고, 사업하고 싶은 지방을 만드는 지역정책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내 지역의 인재가 전국의 공공기관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발로 뛰며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먼 훗날 세월이 지나 지금을 돌아봤을 때 “‘가지 않은 길’을 갔던 지자체가 곧 그 지방의 운명을 바꿔놨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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