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치솟던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자 지난해 7월부터 10개월 동안 계속되던 한국전력의 ‘역마진’ 구조가 지난 5월부터 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전이 발전회사로부터 사들인 구입 단가가 ㎾h당 132.43원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한 가격인 138.83원에 비해 낮아져 적자 탈출의 서광이 보인다는 신호다. 이런 이유로 올해 3분기 전기요금은 ‘동결’로 결정됐다.
국제 유가가 계속 안정되면 이제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한전은 역마진 시정으로 당장 재무상 흑자 전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발전회사로부터 구입한 가격에 한전의 영업비용과 송배전 등 전력망 운영 비용을 더하면 적자 상태라는 것이다. 더구나 미래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한 엄청난 설비투자를 고려하면 단순히 영업이익이 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투자비를 보상할 정도의 이익이 추가돼야 건전한 운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것을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서는 ‘총괄원가’라고 규정한다.
여전히 상당한 정도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전기요금을 추가 인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참고로 전기요금은 관련법에 따라 전기의 안정적 공급에 드는 총괄원가를 보상하는 수준에서 결정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해 정하게 돼 있다.
그러면 전기요금 인상 때마다 정치적으로 논란이 돼온 한전의 ‘이미 발생한 누적 적자 44조원’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쪽에서는 탈원전과 졸속으로 추진한 재생에너지 확대가 주범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천연가스와 석탄 등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 탓이라고 주장한다. 후자인 경우 외부적 요인이니 요금에 전가해야 하나, 전자의 입장을 따르면 정부 정책 실패에 따른 결과이니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한전은 2026년까지 25조7000억원에 달하는 재무구조 개선을 약속했다.
결국 산술적으로 44조원에서 25조70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셈으로, 한전이 추가적인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거나 전기요금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는다면 국제 에너지 가격 폭락에 따른 예기치 않은 횡재 이익 발생으로 손실을 메꾸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결정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전기위원회 기능을 강화해 전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기위원회가 현재의 산업부 자문기관이 아닌 독립된 규제기관이 되고 위원들의 전문성이 보강되면 요금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과 합리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전기위원회가 정치권의 입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요금을 결정할지는 의문이다. 직격탄을 맞은 유럽에서 민간 전기회사가 국유화되고 많은 정부가 전기요금을 보조하는 사례처럼 규제당국의 합리적 전기요금 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제 에너지시장이 안정되면서 전기요금이 일반 국민의 관심에서 잠시 벗어나 있을 뿐 근본적인 해법은 없다. 앞으로 세계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고, 국제 에너지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면 전기요금을 둘러싼 갈등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누적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을 더 이상 짜낼 마땅한 방도도 없다. 하반기에 물가가 안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하니 정부는 법 절차에 따라 전기요금 현실화를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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