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임상시험수탁(CRO) 기업인 씨엔알리서치가 연내 첫 미국 지사를 세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국제 기준에 맞게 임상 데이터를 표준화하는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1위 넘어 글로벌 ‘공략’
윤문태 씨엔알리서치 대표는 최근 “해외 CRO를 인수합병(M&A)하기에 앞서 현지에 지사를 먼저 세우는 방법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며 “미국뿐 아니라 태국에도 연말까지 지사를 설립하고 글로벌 프로젝트 수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CRO란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대행해주는 기업이다. 환자 모집, 투약뿐 아니라 규제당국 승인을 위한 절차도 맡는다. 대부분 임상시험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80~90%를 차지하는 유럽과 미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외국계 CRO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씨엔알리서치는 이런 ‘선천적’ 한계를 한국 기업 특유의 작업 속도와 근면성, 유연성으로 극복해 수주 계약을 따내고 있는 업력 25년의 토종 CRO다.
씨엔알리서치는 아시아의 임상 허브인 중국(2010년)과 싱가포르(2012년)에 현지 지사를 세우며 글로벌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시장 규모 등을 감안해 제약·바이오산업 최대 시장인 미국에 승부를 걸기로 하고 해외 진출 전략을 수정했다. 미국 현지 CRO를 인수해 진출하려던 전략도 보류했다. 허가당국인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네트워크가 좋은 CRO를 1순위로 뒀지만 조건이 맞는 인수 대상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윤 대표는 “(M&A 대신) 다른 국내 기업들과 협업해 미국 현지 지사를 세울 계획”이라며 “일단 FDA와의 소통을 직접 풀어나가는 데 집중한 뒤 차츰 M&A에 나설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매출 비중 더 높일 것”
오는 10~11월에는 태국에도 현지 지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싱가포르에 이은 두 번째 동남아시아 지사다. 윤 대표는 “최근 태국 임상시험이 더 활발해지는 추세”라며 “한국보다 모집할 수 있는 환자군이 많고 비용도 절반가량 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중소 바이오텍뿐 아니라 제약사들도 태국에서 임상시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씨엔알리서치는 올 상반기 매출 256억원(별도 기준)을 올렸다고 14일 공시했다.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했다. 수주 잔액은 1483억원이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윤 대표는 “전체 매출의 10%가량이 글로벌 프로젝트에서 나오는데 이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데이터 표준화 작업 ‘속도’
씨엔알리서치는 질환별 임상데이터를 표준화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진출에 앞선 ‘준비 운동’이다. 윤 대표는 “임상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정확성”이라며 “여러 병원, 여러 나라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임상시험은 데이터가 국제적으로 표준화돼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라고 했다.씨엔알리서치는 자체 개발한 정보기술(IT) 플랫폼 ‘아이엠트라이얼’ 특허를 취득해 데이터 표준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임상시험을 처음 계획할 때부터 국제표준에 맞게 설계하게끔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