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차별 아냐”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단독 김한성 판사는 메리츠화재해상보험 퇴직자인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김 판사는 메리츠화재의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메리츠화재는 2018년 정년을 만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만 55세부터 임금이 삭감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임금피크제는 적용 대상 직원이 55~56세일 때 연봉이 기존의 90%, 57세엔 80%, 58~59세에는 50%까지 깎이도록 설계됐다.
A씨는 이 같은 방식이 연령 차별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삭감된 임금 전액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임금피크제 도입 후에도 이전과 같은 업무를 하고 업무량 감축 등 적절한 보상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같은 주장은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선 정년 연장 자체가 가장 중요한 보상”이라며 “업무 강도를 반드시 경감해줄 법적 의무가 있다고 볼 순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 적용 1·2년 차 때는 기존의 90%까지 연봉을 지급하는 등 임금총액 측면에선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한국농어촌공사 삼성화재 KT 등 여러 기업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소송에서 승소했을 때와 비슷한 논리다.
쟁점 다양…법정분쟁 잇달아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면서 노사 간 법적 분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는 지난 5월 KB신용정보 전·현직 직원 네 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피크제 소송에서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임금피크제 적용 첫해부터 연봉이 기존의 45~70%로 깎이는 것이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재판부는 “근무 기간이 2년 더 늘었음에도 임금 총액은 삭감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비슷한 시기 대구지방법원도 대구경북능금농업협동조합 퇴직근로자 다섯 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이때는 집단적 동의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모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점이 문제가 됐다.
근로자들이 연거푸 승소한 상황에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기업들의 목소리에도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근로자와 첨예하게 대립해온 보험사들은 이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화생명보험지부는 임금피크제 소송인단 추가 모집에 들어갔다. 삼성화재 근로자들은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심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KB손해보험 등 다른 보험사 노조들도 임금피크제를 임금·단체협상 주요 안건으로 다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로펌 노동전문 변호사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근로자에게 업무 경감 등의 보상을 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진행 중인 다른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곽용희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