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투자자의 '차등적 취급 약정'으로 인해 회사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면 전체 주주의 동의를 받고 체결된 계약이더라도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A씨 등이 살균제 제조업체 B사를 상대로 낸 투자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측 상고를 기각하고 사실상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회사의 자본적 기초를 위태롭게 해 회사와 주주 등의 이익을 해한다면 설령 주주 전원의 동의가 있더라도 주주 평등의 원칙에 반해 무효"라며 이같이 판결했다.
주주 평등의 원칙이란 주주가 회사와의 법률관계에서 주식의 수에 따라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반해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는 차등적 취급 약정은 원칙적으로 무효로 본다.
대법원은 최근 주주 전원의 동의에 따라 이뤄진 차등적 취급 약정이 상법 등 강행법규에 어긋나지 않을 경우 효력을 인정하는 판결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주주 전원의 동의가 있더라도 차등적 취급 약정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는 예외 사례에 대한 법리를 새롭게 제시했다.
A씨 등은 2019년 6월 B사의 주식을 인수하면서 "회사가 연구·개발 중인 조류인플루엔자 소독제를 2019년 10월까지 질병관리본부에 제품등록하고 같은 해 12월까지 조달청에 조달등록한다"는 투자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는 "약정 기한 내 제품등록 및 조달등록이 불가능한 경우 투자계약을 무효로 하고 투자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B사는 계약에서 정한 기한까지 제품등록 등을 마치지 못했다. 이에 원고들은 "약정대로 투자금을 돌려달라"며 B사와 이해관계인으로서 투자계약을 함께 체결한 B사 대표, 연대보증인으로서 계약에 참여한 B사 연구개발 담당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 측은 "(투자금 반환 조항은) 다른 주주들에게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므로 주주 평등의 원칙에 위반돼 무효"라며 맞섰다.
1심 재판을 맡은 수원지법은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B사의 기존 주주 전원이 투자계약 체결에 동의했으므로 (투자금 반환) 조항은 주주평등의 원칙 위반이 아니라"라고 봤다.
하지만 수원고법은 2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투자금 반환 조항이 원고들의 투자금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해 다른 주주에게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고 봤다. 이에 기존 주주 전원이 동의했더라도 주주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B사 대표, 연구개발 담당자와 투자자들이 맺은 계약도 주주 평등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무효라고 봤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원고 측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일부 주주에게 투하자본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취지의 금전지급약정의 경우 차등적 취급에 주주 전원이 동의했더라도 예외적으로 효력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만 B사 대표와 연구개발 담당자에 대한 원심 판결은 파기환송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주주와 다른 주주 내지 이사 등 개인 사이의 계약에는 주주 평등의 원칙이 직접 적용되지 않고, 그 계약의 효력은 주주와 회사가 체결한 계약의 효력과는 별개로 보고 있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은 B사 대표가 이 사건 조항에 따라 부담하는 투자금 반환 의무가 B사의 투자금 반환 의무를 따라가는 연대보증채무인지 아니면 독립된 연대채무인지 등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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