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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작가 정보라가 고른 등골 서늘한 책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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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현실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지금 이곳’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귀신 이야기로 변신해 거리를 떠돈다. 서구 기독교 문명에선 신에게 거역하는 사탄으로, 일본 도시 괴담에선 ‘묻지마’ 살인을 벌이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으로 등장하듯 말이다.

사무실까지 더위가 침투해오는 어느 여름날, 정보라 작가(47·사진)에게 물었다. 우리를 오싹하게 할 책은 무엇이냐고. <저주토끼>로 지난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한다”는 평을 받은 그다.

정 작가가 추천한 네 권의 ‘사회비판적 호러’ 책을 정리했다. 때로 누군가에겐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귀신보다 무서운 법. 등골 서늘한 소름을 선사하면서도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사회의 억압에 못이겨 恨 품은 여자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한국에는 유난히 원한 가득한 처녀 귀신이 많다. <여성, 귀신이 되다>(2021)는 그 이유를 탐구하는 역사 에세이다. 정 작가는 “조선시대 여성 귀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성리학적 이념 체제가 어떤 억압으로 작용했는지 설명하는 책”이라며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여성 귀신의 서사에는 비슷한 패턴이 있다. 먼저 이승에서의 한을 품은 처녀 귀신이 등장한다. 구천을 떠돌며 기이한 문제를 일으키다가 마을 원님이나 용감한 사내를 찾아간다. 결국 남성들이 사건을 해결해주면 감사 인사를 하고 성불하는 식이다.

저자 전혜진은 이들이 귀신이 된 배경에 남성 중심성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생전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은 귀신이 된 뒤에야 풀어낼 수 있었다. 성폭력과 가부장제 등 다양한 사연이 있다.

결말에는 귀신의 시신을 찾아 제대로 제사 지내고 열녀비를 세워 위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여기에도 기존 질서를 유지하길 바랐던 지배층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음력 1월 16일, 여자 귀신의 핏빛 복수극
여성 귀신 이야기는 오늘날 어떻게 이어졌을까.

<귀신이 오는 밤>(2022)은 ‘귀신날’이란 민간전승을 소재로 장르 작가 7명의 단편을 모은 앤솔러지다. 모든 작품은 정월대보름 다음날인 음력 1월 16일을 배경으로 한다. 예로부터 이날 일하거나 바깥출입을 하면 귀신이 붙는다고 전해졌다.

책은 여성 문제를 중심으로 신분과 계층 차별, 성차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현대 사회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다. 수록작 ‘창백한 눈송이들’은 군부대 내에서 성범죄를 겪은 여군이 귀신날에 일으키는 복수극을 담았다. 2020년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제발 나 좀 죽여줘" 배고픔만 남은 좀비들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다. 생애 마지막 순간을 후회 없이 매듭짓는 ‘웰다잉(well-dying)’도 ‘웰빙(well-being)’만큼이나 중요한 관심사다. 지난 코로나19 기간 고통과 죽음의 가능성을 일상적으로 맞이한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이웰 주식회사>(2020)는 팬데믹 상황 죽음 앞에서 경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소설집이다. 저자 남유하는 네 편의 단편을 통해 안전망이 부족한 사회 체제가 ‘진짜 공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정 작가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창궐하기 직전, 팬데믹 사회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 점이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표제작 ‘다이웰 주식회사’는 ‘후천성 심정지 증후군(ACAS)’이란 감염병이 창궐한 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이 병에 걸리면 심폐 기능이 멈추고, 뇌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식욕만 남는 좀비 상태가 된다. 치료법은 없다. 감염자에게 편안한 죽음을 선사하기 위한 국가 공인기관 ‘다이웰’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혜택’은 아무나 누릴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2450만원에 이르는 안락사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책은 빈곤층 좀비들이 가족에 의해 버려지거나 불타고 맞아 죽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맞는 사회를 묘사한다.
참사 후 고립된 세상, 그곳에 정상인은 없었다
<므레모사>(2021)는 참사 이후 오염돼 고립된 ‘므레모사’에 여행을 떠난 인물들이 므레모사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겪는 무서운 사건들을 그린 소설이다. 저자 김초엽은 재난과 환경오염, 지역 차별, 소수자의 삶의 의미까지 복합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는 다리를 잃고 의족을 찬 무용수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주변 사람들은 장애를 가졌음에도 무용을 계속하는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공의 내면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남들이 자랑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비추기 위한 고통의 나날이 계속됐다.

므레모사라는 상상 속 지명은 모래, 더 나아가 사막을 연상케 한다. 므레모사 주민들은 이 지역에 자발적으로 남아 살아간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소름이 끼치는 외형을 가진 채로 말이다. 책은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책이 말하는 ‘진짜 공포’는 끔찍한 모습을 한 므레모사 주민들이 아닌, 이들을 바라보는 ‘정상인’의 편견이다.

안시욱 기자·사진 제공=Hye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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