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사진작가 강홍구는 최근 예술인 모임에서 한 유명 시인의 자기 자랑을 들었다. “교과서에 내 작품이 실려 있는데, 시를 쓴 지 수십 년이 된 지금도 교과서가 팔릴 때마다 인세가 들어온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억울했다. 강 작가 역시 작품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대가로 받은 건 작품이 나온 교과서 한 권과 출판사 수첩 하나뿐. 금전적 보상은 일절 없었다.
지난달 3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시각예술저작권협회 미술인 간담회. 연단에 선 강 작가가 “이게 말이 되냐”며 익살스럽게 경험담을 이야기하자 미술계 관계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들의 웃음은 어쩐지 씁쓸했다. 강 작가처럼 저작권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경험을 한 사람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노래에 저작권이 있듯, 미술 작품과 디지털 이미지에도 저작권이 있다. 하지만 다른 문화 분야에 비해 미술은 유독 저작권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같은 문화계에 속하는 출판계에조차 ‘미술은 공짜’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멸종 위기 동물들을 세밀하게 그려 국내외에서 각광받는 작가 고상우도 세미나에서 “무료로 교과서에 작품을 싣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돈은 아쉽지 않았지만 잘못된 관행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저작권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데 해외에서는 오죽할까. 최근 중국에서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 이미지를 무단 도용한 아트 상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인터넷과 SNS 등에서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내려받은 뒤 이를 기반으로 조잡한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식이다. 빛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는 인기 작가 황선태도 최근 이런 피해를 봤다. 그의 작품을 베껴 만든 ‘중국산 무드등’은 한때 쿠팡 등 국내 오픈마켓에서까지 팔렸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 BTS 등 K컬처가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건 ‘잘 만들면 저작권료로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미술 분야에서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마침 세미나가 열린 이날 문화체육관광부는 ‘K-콘텐츠 불법유통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드라마·영화·K팝·웹툰의 불법 유통을 강력히 근절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미술 분야 관련 내용은 없었다. “왜 미술은 공짜여야 하는가”라는 작가들의 외침이 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