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지원의 한 축을 담당해 온 한국소아마비협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31일 서울시와 광진구 등에 따르면 협회가 운영하는 복지관과 보호시설 등은 최근 정상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협회 산하기관으로 국내 최초 장애인기업인 정립전자가 코로나19 기간에 무리하게 시작한 마스크 생산업이 실패하면서 협회에 들어오는 서울시 보조금과 운영자금 수십억원이 압류를 당해서다. 이로 인해 중증장애인이 사용하는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직원 월급이 밀리고 전기세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당장 장애인 이용시설에도 비상이 걸렸다. 하루 400명의 장애인이 체육 및 문화활동을 위해 방문하는 광진구 정립회관이 2주 전부터 3대의 버스 순환운영을 중단하면서 이동수단이 없는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게 됐다. 협회 전 경영진의 투자실패 불똥이 시설을 이용하는 애먼 장애인에게 튄 것이다. 정립회관의 한 이용자는 “장애인 복지를 위해 마련된 자금을 엉뚱한 데 소진하고 대책도 없이 이동수단을 끊으면 어떡하냐”고 반발했다.
1989년 설립한 정립전자는 한때 삼성전자에 이어폰을 납품하기도 했으나 공급처가 줄어들면서 경영이 어려워졌다. 이 과정에서 원장과 일부 직원이 349억원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사고도 발생했다. 2020년 마스크 사업을 위해 무리하게 설비투자에 나섰다가 40억원이 넘는 빚만 남겼다. 오는 9월께 폐업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정립전자의 채권자들은 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협회 산하시설의 계좌를 비롯해 운영자금 23억원가량을 압류하고 현재까지 9억원을 추심했다. 기존 이사진과 법인 대표는 지난해 물러나고, 지금은 비상대책위원회 운영체제다.
이계원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은 “부채 문제를 이른 시일 안에 해결하겠다”며 “경영 정상화를 위해 산하 기관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만 비대위 결정에 반발하는 기관장과 실무진에 대한 직위해제 등이 잇따르면서 내부 갈등은 한층 커졌다.
직원 연대는 “서울시 보조금과 체육동호회 후원금 통장도 압류된 상황”이라며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르면 보조금은 압류 대상이 아닌데도, 비대위가 압류를 방지하기 위해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조금을 지원하는 서울시는 지난해 경영컨설팅을 한 데 이어 협회에 부동산 일부를 처분해서 돈을 마련하라고 한 상태다.
엄기숙 서울시 장애인권익보장팀장은 “법원에 압류 범위 변경 신청을 내도록 협회를 지도했으며 향후 보조금이 부채 상환에 쓰이지 않도록 지켜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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