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는 ‘현역 의원 교체율과 총선 승리 가능성은 비례한다’는 속설이 있다. 공천받지 못하는 현역 의원 비중이 높은 당일수록 총선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 속설은 2008년 18대 총선을 시작으로 2016년 20대 총선까지 세 차례에 걸쳐 연달아 들어맞았다. 총선 때마다 여야 모두 쇄신을 명분으로 ‘현역 물갈이’에 나서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내년 총선을 8개월 앞두고 여야에서도 관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영남권 3선 이상 퇴진론’, 더불어민주당에선 ‘586 의원 퇴진론’이 힘을 얻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계적인 물갈이를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총선 때마다 이뤄진 물갈이로 경륜 있는 정치인 양성과 전문성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총선(21대 국회)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 비율은 50.3%(151명)다. 20대(42.3%), 19대(49.3%), 18대(44.8%) 국회 때도 40%를 훌쩍 넘겼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현역 의원 43.5%를 교체했다.
이에 대해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재선, 3선을 해야 상임위원회에서 간사나 위원장을 맡으며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데, 기계적인 수치에 맞춰 교체되다 보니 그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상당수 의원이 초선이라 선거 경험이 부족해 지난 대선 과정 때 고생했다”며 “주요 국가 중 선거 때 몇 퍼센트 교체했다고 홍보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미국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2022년 열린 118대 미 의회에서 초선 하원의원 비율은 16.8%에 그쳤다. 117대(11.9%), 116대(20.4%), 115대(11.8%) 등 한국과 비교하면 초선 비율이 낮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은 ‘의원 교체가 곧 쇄신’이라는 인식이 없고, 각 지역에서 상향식으로 공천하다 보니 인위적인 물갈이가 없다”며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현역 국회의원 교체율은 낮다”고 설명했다.
다른 한편에선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열망하는 유권자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선거마다 물갈이 요구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정치에 대한 국민 불신이 강하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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