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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식민의 땅' 과테말라…산비탈마다 붉은 원두가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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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나선형으로 강하하며 활주로를 찾기 시작한다. 아주 먼 곳까지 푸르른 숲으로 덮인 땅이 보인다. 과테말라다. 과테말라는 마야 방언에서 나온 단어로 ‘나무가 많은 땅’이란 뜻이다. 유럽 예수회 선교사들은 1700년대 이 땅에 커피를 가져왔다. 그 커피는 과테말라의 자연환경에 뿌리 내렸고, 1850년대 이후 상업적으로 재배됐다. 커피 농사는 정부가 장려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무역 정세의 변화, 영국의 인공염료 개발로 인디고 산업이 몰락한 게 계기였다. 여느 중남미의 유럽 식민지들과 같이 점점 늘어나는 ‘먼 나라’의 커피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수출의 역군이 됐다.

과테말라의 대표 커피 산지는 안티구아를 비롯해 아티틀란, 우에우에테낭고, 아카테낭고 등이다. 마야인의 방언에서 나온 도시의 이름들은 그 자체로 신비하거나 낭만적인 인상을 준다. 실제로 과테말라 커피를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에는 아티틀란 호수의 호젓함이나 안티구아를 둘러싼 웅장한 화산의 모습이 가득하다. 또 마야인들의 우주와 별에 대한 혜안이 과테말라 커피를 설명하는 문장에 더해져 환상을 키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낭만은 “과테말라 커피가 화산의 영향으로 스모키한 향이 난다”고 마케팅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신기루와 같다. 좀처럼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있으니,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에 우리의 감각은 쉽게 환상에 빠진다.
움푹 파인 내전 후유증, 그걸 이겨낸 커피
300년이 넘는 식민 지배를 벗어난 과테말라는 민주화 운동과 혁명을 통해 민주 정부를 수립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아레발로와 아르벤즈 대통령은 토지개혁을 통해 그 잔재를 지우고 성장의 기틀을 다지고자 했다. 무려 72%의 농작지가 2%의 소수 엘리트에 의해 독점되고 있던 때다. 두 대통령은 외국 기업의 독점을 해체하는 데 힘썼다. 대규모 플랜테이션으로 수익을 내던 자국 기업이 피해를 보자 미국 정부는 미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사건은 36년에 이르는 내전으로 이어졌다. 1996년 내전은 종식됐지만, 전쟁의 후유증과 다국적 기업의 무역 개입, 커피 원두값 폭락 등의 악재가 이어졌다.

멕시코 국경 인근 산 페드로 넥타 지역의 로즈마 농장으로 가는 길에서 그 역사의 후유증과 마주했다. 대도시인 우에우에테낭고 경계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움푹 파인 웅덩이가 빈번했다.

미국의 오래된 스쿨버스를 개조한 ‘치킨버스’가 엎어지는 사고가 있었고, 우회 도로가 없는 길목에서 한참을 기다리는 경우도 왕왕 발생했다. 망가진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이 일으킨 뿌연 먼지 사이로 마야인들 삶의 터전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했다.

비탈길을 올라 산골짜기에 이르자 농장 입구가 나타났다. 1963년에 농장주의 아버지인 알레한드로 모랄레스가 처음 커피나무를 심었을 때만 해도 오토바이와 노새를 타야만 농장에 이를 수 있었다고. 그는 지역 커뮤니티와 연대해 도로를 증설하고 파이프라인을 개설해 물을 끌어오면서 농장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자식들은 가업을 잇기 위해 커피를 공부했고, 여러 커피 옥션에서 좋은 성과를 얻어왔다.

로즈마 농장을 운영하는 프레디 모랄레스는 “아직도 이 험난한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커피를 수확하는 피커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듣고 돌아보니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자루를 들고 커피를 수확하는 피커의 모습이 보인다. 이 여정을 생각하니 이들의 커피에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일이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어떤 이의 커피 한 잔을 위한 누군가의 불편함
커피 재배와 같은 대부분의 1차산업은 과테말라를 비롯한 중남미, 아프리카와 남반구 국가들에 의무처럼 부여돼 있다. 농산물 재배는 그 특성상 현대의 경제구조에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없으니, 북반구 소비국들은 그들의 값싼 노동력에 의지해 필요한 농산물을 구입한다. 특히 커피시장은 흔히 ‘C마켓’이라 불리는 ‘아라비카 선물거래소’가 정해 놓은 표준가격에 따른다. 주요 커피 소비국이 보다 안정적인 커피 수매를 위해 만든 이 선물시장은 커피라는 작물의 개별성을 무참히 짓밟는다. 낮은 품질의 커피가 브라질, 베트남 등에서 대량 생산되며 전체 커피 가격은 제자리걸음이다. 고품질의 스페셜티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 가격표에서 벗어난 좋은 품질의 커피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커피 산지 국가 대부분의 은행 이자는 소비국에 비해 높은 편. 생산시설을 현대화한 뒤 빚더미에 오르는 사례가 많다. 운이 좋아 스페셜티 커피 거래에 발을 들여도, 샘플을 요청받고 가격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하는 사례도 많다. 전체 커피 농가의 3.5%가 50% 가까운 농지를 소유하고 있으니 ‘규모의 경제’는 아주 일부 농가에만 주어지는 셈이다.
작은 움직임이 만든 ‘지속 가능한 미래’
이런 구조 속에서도 커피벨트에는 미래를 꿈꾸는 혁신가가 많다. 과테말라와 브라질을 중심으로 농장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수출을 돕는 커피업체 ‘로스 볼카네스’ 대표 호세 모랄레스는 “커피산업에 뛰어들기 전까지 내가 마신 커피는 대부분 2, 3등급의 좋지 않은 커피였다”며 “우연히 ‘진짜 과테말라 커피’ 맛을 본 순간 산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농부들과 함께 먹고 자며 찾은 그 커피들은 어디에서 그것이 싹을 틔웠는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었다고. 때로는 진한 꽃향기가, 때로는 과일의 달콤하고 상큼한 맛이 깨끗하게 드러나는 이 커피들은 호세의 손을 거쳐 ‘추적 가능한 스페셜티 커피’가 될 수 있었다. 10년 전 미국 출신의 커피인 댄 그리핀과 수출회사를 세운 그는 브라질에도 진출했고, 2018년 로스 볼카네스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커피 구매자와 마주하기 시작했다. 유기농법과 품종을 발굴하는 데 매진한다.

안티구아 최초의 커피 농장을 설립한 마누엘 마테오의 손녀 마르타 달톤 역시 무역회사 ‘커피버드’를 만들어 거래 방식을 개선하고 스페셜티 커피시장을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힘쓰고 있다. ‘카페 가스콘’과 같이 젊은 농장주가 유기농 비료와 새로운 가공법을 실험하는 농장도 발굴한다. 이들의 작은 움직임은 커피 생산의 지속 가능성을 후원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글·사진(과테말라)=조원진 칼럼니스트 <스페셜티 커피,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수까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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